서해랑길 1코스(출발은 힘들다!)
서해랑길 1코스 14.9km 5시간 중간
원하는 것은 오직 숲 속의 산책길이다. 온갖 소란에서 벗어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평판을 매일 같이 확인하고, 친구들을 계산적으로 사귀고, 적들을 구슬리고, 자신의 후원자에게 아부하고, 바보들과 거들먹거리는 자들의 눈에 자신이 중요한 사람으로 비치는지를 끊임없이 헤아리고,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앙갚음하고, 말에 대해 복수하는 짓일랑은 그만 두고 싶었다.<루소>
2024년 12월 9일 아침이다.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 7시 30분에 현관문을 나선다. 약간 찬 기운이 감도는 아침공기가 상쾌하다. 가득 들이마시고 심호흡을 한다. 이유 없이 뿌듯해진다. 1차 투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땐 비상계엄의 소용돌이가 해결의 가닥을 잡기를 기대한다. 망할 놈 같으니!
해남행 버스 안, 건강보험공단 검사를 제출한 동네 병원에서 내원하라고 한다. 이건 또 뭔가. 서해에 도착하기도 전에 돌아오라니. 쩝! 어째건 사상을 떠난 시외버스는 해남을 향해 달리고 있다. 프리미엄 버스라고 하는데 처음 타 본다. 타본 적은 없지만 비행기 1등석 같은 느낌이다. 오후 1시를 조금 넘겨 해남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40분 후 땅끝마을로 향하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서해랑길 1코스 출발지로 향한다.
다시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역시 출발은 힘들다! 지난해 5월 남파랑길 마지막 코스 종점이었던 땅끝탑은 여기 땅끝마을에서 해변의 데크길을 따라 약 500m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 지난 해 남파랑길을 끝내고 내려오던 길을 이제 다시 서해랑길을 걷기위해 올라간다. 마음이 조급하다.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땅끝탑으로 가는 길 초입에 늙은 팽나무 한 그루가 유독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오랜 시간 동안 온갖 신산을 겪어 울끈불끈 기묘하게 굵은 가지들을 펼치고 있는 그 모습에 경외감이 든다. 바다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노어부의 손마디 같다.
서해랑길에 들어 섰다. 뒤 돌아 출발 지점을 보니 땅끝탑의 모습이 보인다. 해안을 따라 조성된 데크 길은 땅끝탑에서 약 400-500m 정도 이어지다가 드디어 숲 길을 만난다. 목재 데크길은 걷기엔 편하고 안전하지만 다소 무미건조하다. 데크길이 끝나고나타나는 숲의 오솔길은 마치 고향처럼 푸근한 느낌을 준다. 이런 오솔길과 임도를 지나면 1코스에서 가장 볼만한 경관을 자랑하는 송호해변을 만나게 된다.
송호해변은 전형적인 시골의 해수욕장이다. 마침 계절은 초겨울 해질 무렵이라 조용하고 한적하다. 썰렁하기까지 하다. 송호해변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송림은 나름 훌륭하게 군락을 이루고 또 관리되고 있다. 몇몇 나무의 모습은 아주 멋지다. 그러나 송림이라 하면 하동의 백사청송 소나무 군락이 최고이다. 적어도 내가 본 송림 중에서는... 백사청송은 섬진강변에 군락을 이룬 소나무들과 강변의 은빛 모래를 아울러는 이름이다. 송호해변의 송림을 보고 떠 오른 백사청송의 기억이다.
그나저나 1코스 종점인 송지면, 숙박을 위해 단 하나의 모텔인 한솔모텔에 전화를 했다. 오 마이갓! 마지막 방 하나가 조금 전에 팔렸고 만실이라 한다. 아! 난감하다. 송지면에는 다른 마땅한 숙박처가 없다.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내려면 버스로 1시간 거리인 해남읍내로 가는 수밖에 없다. 1코스 종점인 송지면사무소 앞에 도착 후 정류장으로 가 농어촌버스를 기다린다. 읍내로 가기 위해...
터미널 근처 허름한 모텔에 방 하나를 얻었다. 고민한다. 계속가야하나 아니면 철수하고 다음을 기약해야하나? 아침에 눈을 뜨면 답이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