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36, 37코스(T4-Day3) 설도항에서 하사정류장까지
2025년 2월 27일(목) 이른 새벽, 잠이 깼다. 4시다. 어제 사둔 컵라면과 하루 종일 배낭에 들어있던 김밥 한 줄로 식사를 했다. 오늘은 38코스 종점까지 갈 예정이다. 40km가 넘는 거리다. 기존 코스로 걸어선 힘들다. 더구나 다리 상태도 상당히 불량하다. 36, 37, 38코스는 대부분의 구간이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갯벌과 해안선을 따라 축조된 제방길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또 걸어왔던 길이다. 오늘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해안이 아닌 내륙을 관통하는 길을 찾아내 그 길로 걷는 것이다. 이렇게 걸으면 상당히 많은 거리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조금은 다른 느낌의 경치를 보며 길을 걸을 수 있다. 차도와 농로, 마을과 저수지, 염전과 제방 등을 통과하는 길이다. 새로운 루트를 설계하고 오늘의 걷기를 머리에 그려본다.
36코스 14km 4시간 30분 난이도 쉬움(587.1)
오전 7시 20분. 아침은 힘이다. 하룻밤 묵은 염산면을 뒤로하고 길을 나선다. 서해랑길 36코스는 칠산타워에서 합산버스정류장까지 14km의 거리이다. 어제 설도항까지 6.5km는 이미 걸었다. 남은 거리는 7.5km이다. 염산면에서 출발하여 염산교회- 봉남리-조개산 자락을 통과하는 3.5km를 걸으면 36코스 종점에 도착한다. 미세먼지 없는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새로 짠 루트, 내가 만든 길을 걸으니 뿌듯한 기분이다. 아무튼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 코스를 잘라먹었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창시한 신흥 종교인 원불교는 새로운 불교로 일원상의 진리와 함께 생활화. 대중화. 시대화를 추구한다고 한다. 영광군은 4대 종교를 품어 안은 성지순례의 메카라 홍보하고 있다. 기독교, 백제불교, 원불교, 천주교 탐방이 그것이다.
37코스 19.9km 6시간 난이도 쉬움(606.8)
갯골은 하천의 물이 바다 혹은 해협으로 흘러들어가는 물길로 강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즉, 갯벌을 흐르는 강이다. 만조 시에는 상당히 깊은 수심을 갖으므로 갯벌에 들어갔을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갯골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도 종종 있다.
가음산이다. 서해랑길 37코스는 가음산을 오른편에 두고 해안으로 나가는 길이다. 나의 새 루트는 가음산을 왼편에 두고 송암리 방향으로 걷는 길이다.
야월교회는 미국에서 파송한 유진 벨 선교사에 의해 1908년 설립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도 신앙으로 이겨냈지만 6·25 전쟁 때 65명의 성도들이 순교당하고, 교회도 불태워지는 참상을 겪었다고 한다.(야월교회 안내문 참조)
오늘 오전 길 걷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두우리' 방문이다. 벌써 15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 회사는 2009년 이곳 두우리에서 "제1회 영광갯벌마라톤축제"를 개최했다. 서울과 영광은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대회 개최를 위해 사전 답사도 많이 했고, 군 관계자와 회의도 여러 차례 있었다. 우린 홈페이지를 열고 전국의 달림이들을 모집했다. 직원들은 일주일 전부터 이곳에 상주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낮엔 덥고 밤엔 춥고, 협소한 해안가와 뻘밭, 모래밭에서의 대회 준비는 힘들고 어려웠다. 대회 전날 도착한 나는 어촌계 건물에서 잠을 잤는데 너무 추워 벌벌 떨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 두우리 모기는 왜 그렇게 크고 시커먼지 도시 모기는 명함도 못 내민다.
어촌계건물로 다가가보니 그 당시 행사본부로 사용했던 1층 안내실의 문을 열려 있어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안내실의 책장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2009년 당시 갯벌마라톤 행사 팸플릿이 보였다. 그것도 딱 1장이다. 책장에는 근래의 안내 책자와 홍보 팸플릿들뿐인데 어떻게 이게 아직 여기에 있을까? 한 장의 옛날 리플릿이 묘한 느낌을 준다. 나를 기다린 것 같은 2009년 리플릿을 배낭에 넣었다.
길을 걷다 눈길만 한 번 보내도 그곳은 내 땅이다.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거나 경치를 감상한 그곳도 당연히 내 땅이다. 법적인 권리나 등기 뭐 그런 것은 하등 중요치 않다. 심적인 소유가 중요하지 법적인 소유는 중요치 않다. 후자는 세금도 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세금내지 않는 땅부자다. 사람들과 대화 중 내 땅 얘기가 나오거나, 뉴스나 다큐 등에 내 땅의 소식이 전해지면, 지금 그곳 상황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다. 그곳 형편이 좋다면 다행일 것이고, 나쁜 소식이 있으면 걱정이다. 내 땅에 대한 당연한 관심이다.
서해랑길 최고의 코스로 꼽았던 해남 달도 교차로에서 솔라시도대교까지의 지역에 대규모 개발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엊그제 보도되었다. 토건족과 대기업 배만 불리는 개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얼마나 내실 있는 개발이 이루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투자사 '퍼힐스'가 LPGA 대회 후원금 30억을 내지 못한 회사란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엑트지오란 회사가 가정집에 본사를 두고 세금을 체납했던 보도를 보았던게 불과 얼마 전이다.
창우어촌계로 내려왔다. 영광해상풍력단지가 눈 앞에 나타났다. 어림짐작으로 세어본 거대한 팔랑개비의 수는 80개가 넘을 것 같다. 혹자는 풍력발전기가 가득 늘어선 이 풍경을 멋있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낭만적 분위기의 두우리를 지나 황량하고 거친 들판, 거대한 괴물들이 서 있는 벌판에 들어선 기분이다. 한낮이 되니 햇빛은 따갑기까지 하다. 아침에 모텔에서 나올 때 생수 챙기는 것을 잊었다. 갈증을 느꼈을 땐 배낭에 생수가 없었다. 물론 가게 같은 것은 없다. 인가도 없다. 목마름은 참을 수밖에 없다. 중간에 어디선가 물을 사거나 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걸음에 조금 더 속도를 붙여 본다.
37코스 종점이 멀지 않은 곳에서 천사를 만났다. 허허벌판에 건물이 서 있는데 영광풍력발전 회사다. 건물 입구에 개 한 마리와 같이 있는 젊은 아가씨가 보였다. 다가가 물 좀 얻어먹고 싶다고 하니 그 예쁜 아가씨는 나를 보더니 "걷는 분이세요"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잠시만요" 하면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1분 정도 지났을까? 천사로 변신한 그녀는 생수 2병과 작은 과자 2 봉지를 건넨다.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 "복 받으세요".
오후 1시 37코스 종점 하사버스 정류장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