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서해랑길 43코스(T5-Day2 )선운산을 넘다

로드워커 2025. 3. 12. 09:06

43코스 21.1km 7시간 '보통' (704.0)

서해랑길 43코스는 선운사에서 사포정류장까지이다

  서해안 열린 하구로 멸종위기생물 등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습지보호지역을 지나는 코스이다. 미당 서정주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미당시문학관'과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반암교~용선교' 일대

선운사를 떠나 질마재가 있는 소요산으로 향한다

  선운사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관광지여서 그렇겠지만 식사는 형편없었다. 식사가 끝난 시간은 2시 30분이다. 잠깐이나마 여기는 숙소가 많으니 하루를 묵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아직 훤한 대낮인데 여기서 멈출 순 없지 않은가? 가다 보면 무슨 방법이 생기겠지 하는 맘으로 출발했다. 43코스는 소요산의 질마재를 넘어 부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21km의 코스이다. 선운산을 넘어왔는데 또 소요산길을 넘어야 한다. 게다가 종점인 사포리는 조그만 마을일 뿐이다. 내가 도착한 사포는 깜깜하고 쥐 죽은 듯 조용한 작은 마을일 것이다.

연기제 제방이 보인다
여긴 가물었나보다 저수지 수위가 많이 낮다
저수지 제방에서 내려다 본 연기마을
질마재를 향해 오르막 임도를 오르다
질마재

  질마재는 소요산 자락을 넘어 선운리에 이르는 약 2km의 구간으로 '질마'는 소나 말의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이다. 소금농사를 업으로 살아가는 심원 사람들이 좌치나루터를 넘어와 부안 알뫼장터에서 곡물과 교환하는데 꼭 필요한 길이었다. 이정표엔 '소금짐 지고 쉬어 쉬어 넘던 질마재'라 적혀있다.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은 미당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시문학관으로 2001년 폐교된 선운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완공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 서정주를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객관적 평가는 필요하다. 그는 일제 때 학도병 참가를 고무하는 글을 썼으며, 전두환 군부에도 칭송의 글을 썼다. 그런 친일과 군부에 충성하는 글을 쓴 사람의 시가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 실려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바꾸어야 할 일이다.

  미당 문학관을 지나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 43코스이다. 그러나 나는 해변으로 가지 않고 734번 지방도를 따라 걷기로 하였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이다. 인촌로(734번)를 따라 송현리-봉암리-상암리를 거쳐  갈곡천 입구에서 다시 43 코스에 합류할 생각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여기는 고창의 부안면이다. 이 동리는 신경에 거슬리는 인물들이 있다. 미당 서정주가 그렇고 인촌 김성수가 그렇다. 또 인촌의 일가 후손들도 여러 구설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자세히 그 내력을 살펴볼 엄두는 나지 않지만 기분이 유쾌하지는 못하다.
 
  어둠의 기운이 서서히 길에 내려 앉는 듯하여 발걸음을 재촉할 때 그것도 인촌 김성수 생가 앞 도롯가를 지나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키가 큰 건장한 체구의 한 남자가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오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다. 농부처럼 보이진 않고 그렇다고 이곳에 놀러 온 사람의 행색도 아니다. 아마 길을 걷는 나를 보고 일부러 차를 세우고 기다린 듯했다. 서해랑길을 걷는 중이라 하니 큰 관심을 보여 우리는 길가에서 수 분 간 대화를 했다. 내가 부산서 왔다고 하자 그는 부모님이 지금 부산에 사신다고 또 그 역시 광안리에 살았으니 동향 사람임을 강조한다. 여기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고, 집이 근방에 있다고, 이제 곧 어두워지는데 계속 걷는 것은 위험하니 자신의 집으로 가 얘기도 나누고 주무시고 가라고 강하게 권유한다. 순간 마음이 동했다. 그래 볼까, 이것도 길 걷기의 일부 아닐까? 생면부지의 사람과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불과 200m를 못 가 인촌 김성수의 생가 앞에 차가 멈췄고, 길 건너에 그의 집이 있었다. 이사 정리가 끝나지 않아 마당은 어수선했다. 집 현관에서 그의 아내가 얼굴을 내보였다. 잠깐 인사를 나눴지만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 들어갈 순 없었다. 아무리 강하게 권해도 여기서 밤을 보내는 것은 폐를 끼치는 행동이고 서로가 불편해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마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길로 향했다. 조금 뒤 그는 도로를 걷고 있는 나를 차로 쫓아와 계속 걷는 것은 위험하니 쉬어가시라고 권유 아닌 부탁을 했다. 다시 정중한 거절,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미안함을 전하고야 그와 헤어질 수 있었다. 완연히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걸음을 빨리했다. 

인촌 김성수 생가와 그의 차량
43코스에 다시 합류하다
갈곡천 제방길
어둠 속의 김소희 생가

  고창을 대표하는 인물 김소희는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하늘이 내린 목소리를 소유했던 명창이다. 국악계의 사표이며 국창으로 불리는 만정 김소희의 생가이다. 그녀는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고 안향렬, 신영희, 이명희, 안숙선, 오정해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고창군은 전라북도 6시 8군의 하나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창, 무장, 흥덕 세 고을이 병합되어 생긴 명칭이다. 전북 서남단에 위치한 고창은 동북은 정읍과 부안, 동남은 장성과 영광에 인접하고 있다. 고창군의 행정구역은 1읍 13면이며, 면적은 607㎢이다. 인구는 5만 3천 여 명이다.


택시를 타고 줄포로 가는 중 깜깜한 어둠 속에서 고창과 부안의 경계를 넘었다

  부안군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서쪽 변산반도에 위치하여 서쪽이 황해에 면해 있는 군이다. 부안군의 행정구역은 1읍 12면이며, 면적은 493㎢이다. 인구는 4만 7천 여 명이다.

사포리 버스정류장

  43코스 종점인 사포리에 도착한 시간은 7시 20분이다. 어찌되었던 숨 가쁘게 어둠을 헤치고 걸어왔다. 예상대로 여기는 암흑천지이며, 잠 잘 곳은 당연히 없다. 5km가 넘는 거리에 있는 줄포까진 가야 한다. 어둠 속을 또 걸어갈 엄두가 나진 않는다. 택시를 타자. 오후에 검색해 둔 줄포 개인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했고, 약 10분 후 택시가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나타났다. 줄포는 꽤 큰 면인데 인터넷 검색엔 숙박업소가 보이지 않았다. 기사분에게 모텔이 있냐고 물으니 조그만 게 하나 있다고 한다. 오케이! 그곳으로 갑시다. 43코스 서해랑길 이정표를 찾지 못해 QR 코드 스탬프는 입력하지 못했다.  

줄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