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43코스(T5-Day2 )선운산을 넘다
43코스 21.1km 7시간 '보통' (704.0)
서해안 열린 하구로 멸종위기생물 등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습지보호지역을 지나는 코스이다. 미당 서정주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미당시문학관'과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반암교~용선교' 일대
선운사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관광지여서 그렇겠지만 식사는 형편없었다. 식사가 끝난 시간은 2시 30분이다. 잠깐이나마 여기는 숙소가 많으니 하루를 묵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아직 훤한 대낮인데 여기서 멈출 순 없지 않은가? 가다 보면 무슨 방법이 생기겠지 하는 맘으로 출발했다. 43코스는 소요산의 질마재를 넘어 부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21km의 코스이다. 선운산을 넘어왔는데 또 소요산길을 넘어야 한다. 게다가 종점인 사포리는 조그만 마을일 뿐이다. 내가 도착한 사포는 깜깜하고 쥐 죽은 듯 조용한 작은 마을일 것이다.
질마재는 소요산 자락을 넘어 선운리에 이르는 약 2km의 구간으로 '질마'는 소나 말의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이다. 소금농사를 업으로 살아가는 심원 사람들이 좌치나루터를 넘어와 부안 알뫼장터에서 곡물과 교환하는데 꼭 필요한 길이었다. 이정표엔 '소금짐 지고 쉬어 쉬어 넘던 질마재'라 적혀있다.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은 미당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시문학관으로 2001년 폐교된 선운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완공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 서정주를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객관적 평가는 필요하다. 그는 일제 때 학도병 참가를 고무하는 글을 썼으며, 전두환 군부에도 칭송의 글을 썼다. 그런 친일과 군부에 충성하는 글을 쓴 사람의 시가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 실려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바꾸어야 할 일이다.
미당 문학관을 지나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 43코스이다. 그러나 나는 해변으로 가지 않고 734번 지방도를 따라 걷기로 하였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이다. 인촌로(734번)를 따라 송현리-봉암리-상암리를 거쳐 갈곡천 입구에서 다시 43 코스에 합류할 생각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여기는 고창의 부안면이다. 이 동리는 신경에 거슬리는 인물들이 있다. 미당 서정주가 그렇고 인촌 김성수가 그렇다. 또 인촌의 일가 후손들도 여러 구설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자세히 그 내력을 살펴볼 엄두는 나지 않지만 기분이 유쾌하지는 못하다.
어둠의 기운이 서서히 길에 내려 앉는 듯하여 발걸음을 재촉할 때 그것도 인촌 김성수 생가 앞 도롯가를 지나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키가 큰 건장한 체구의 한 남자가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오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다. 농부처럼 보이진 않고 그렇다고 이곳에 놀러 온 사람의 행색도 아니다. 아마 길을 걷는 나를 보고 일부러 차를 세우고 기다린 듯했다. 서해랑길을 걷는 중이라 하니 큰 관심을 보여 우리는 길가에서 수 분 간 대화를 했다. 내가 부산서 왔다고 하자 그는 부모님이 지금 부산에 사신다고 또 그 역시 광안리에 살았으니 동향 사람임을 강조한다. 여기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고, 집이 근방에 있다고, 이제 곧 어두워지는데 계속 걷는 것은 위험하니 자신의 집으로 가 얘기도 나누고 주무시고 가라고 강하게 권유한다. 순간 마음이 동했다. 그래 볼까, 이것도 길 걷기의 일부 아닐까? 생면부지의 사람과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불과 200m를 못 가 인촌 김성수의 생가 앞에 차가 멈췄고, 길 건너에 그의 집이 있었다. 이사 정리가 끝나지 않아 마당은 어수선했다. 집 현관에서 그의 아내가 얼굴을 내보였다. 잠깐 인사를 나눴지만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 들어갈 순 없었다. 아무리 강하게 권해도 여기서 밤을 보내는 것은 폐를 끼치는 행동이고 서로가 불편해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마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길로 향했다. 조금 뒤 그는 도로를 걷고 있는 나를 차로 쫓아와 계속 걷는 것은 위험하니 쉬어가시라고 권유 아닌 부탁을 했다. 다시 정중한 거절,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미안함을 전하고야 그와 헤어질 수 있었다. 완연히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걸음을 빨리했다.
고창을 대표하는 인물 김소희는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하늘이 내린 목소리를 소유했던 명창이다. 국악계의 사표이며 국창으로 불리는 만정 김소희의 생가이다. 그녀는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고 안향렬, 신영희, 이명희, 안숙선, 오정해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고창군은 전라북도 6시 8군의 하나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창, 무장, 흥덕 세 고을이 병합되어 생긴 명칭이다. 전북 서남단에 위치한 고창은 동북은 정읍과 부안, 동남은 장성과 영광에 인접하고 있다. 고창군의 행정구역은 1읍 13면이며, 면적은 607㎢이다. 인구는 5만 3천 여 명이다.
택시를 타고 줄포로 가는 중 깜깜한 어둠 속에서 고창과 부안의 경계를 넘었다
부안군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서쪽 변산반도에 위치하여 서쪽이 황해에 면해 있는 군이다. 부안군의 행정구역은 1읍 12면이며, 면적은 493㎢이다. 인구는 4만 7천 여 명이다.
43코스 종점인 사포리에 도착한 시간은 7시 20분이다. 어찌되었던 숨 가쁘게 어둠을 헤치고 걸어왔다. 예상대로 여기는 암흑천지이며, 잠 잘 곳은 당연히 없다. 5km가 넘는 거리에 있는 줄포까진 가야 한다. 어둠 속을 또 걸어갈 엄두가 나진 않는다. 택시를 타자. 오후에 검색해 둔 줄포 개인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했고, 약 10분 후 택시가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나타났다. 줄포는 꽤 큰 면인데 인터넷 검색엔 숙박업소가 보이지 않았다. 기사분에게 모텔이 있냐고 물으니 조그만 게 하나 있다고 한다. 오케이! 그곳으로 갑시다. 43코스 서해랑길 이정표를 찾지 못해 QR 코드 스탬프는 입력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