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67, 68코스(MRT7-D4)만리포에서 멈춤
67코스 17.7km 6시간 보통(1,077.6)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송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경관을 볼 수 있는 해변과 어촌풍경이 있는 길.
농어촌체험을 운영하고 있는 '노을 지는 갯마을'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는 '연포해변'
2025년 4월 3일(목) 7차 MRT의 넷째 날이다. 오늘은 68코스 종점인 만리포까지가 목표이다. 일찍 방에서 나와 연포해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어젯밤 숙소에서 출발부터 코스 잘라먹기를 계획했고 아침에 그대로 실행했다. 도황 2리로 우회하는 코스를 수정하여 직진으로 걸었다. 정상 코스 거리는 3.6km인데, 직진거리는 0.6km이므로 3km를 생략했다. 태안의 리아스식 해안은 도보여행자에게 자꾸만 유혹의 손짓을 한다. 눈앞에 보이는 곳을 가는데 보이지 않는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돌아가라 하니 꾀를 내게 된다. 늦더라도 힘들더라도 길 따라가라 하는데 마음은 자꾸 흔들린다.


아침 길 걷기는 항상 좋다. 어슴푸레한 여명, 새벽안개, 떠오르는 해, 아직 사람이 어지럽히지 않은 신선한 분위기로 충만한 길, 간밤의 휴식으로 얻은 새로운 에너지로 걸을 수 있는 것이 아침 길 걷기이다.
반면에 늦은 오후엔 길 걷기가 힘들어진다. 어두워지는 하늘, 일몰, 하루 종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음과 분진이 가득한 길, 딱딱해진 발바닥, 잠 잘 곳에 대한 고민 같은 것으로 힘든 걸음을 하는 것이 저녁 즈음 길 걷기이다. 다만, 오늘 하루도 무사히 걸었다는 작은 만족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곳 태안에도 몇 군데 염전이 있다. 하지만 눈에 차진 않는다. 신안 증도에서 본 태평염전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어지간한 규모의 염전은 대형마트 앞의 구멍가게 정도의 느낌 밖에 주지 않는다. 염전 바닥엔 조금씩 소금 결정이 맺히고 있다.
눈이 높아진 길손에겐 작아 보여도, 여긴 여기서는 크고 중요한 소금밭이다. 신안의 염전은 특별하지만 태안의 염전은 태안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태안 자염축제가 이곳 낭금갯벌에서 열린다. 물때와 날씨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하다 보니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자염煮鹽은 천일염 보급 이전에 선조가 만들어 먹던 전통 소금으로 햇볕에 말린 갯벌 흙을 바닷물로 걸러 염도를 높인 다음 가마솥에 끓여 만든다. 축제에서는 통자락 만들기와 갯벌 말리기, 간수 나르기, 뜸 엮기, 소금 굽기 등 자염 전통생산방식 전 과정이 재현된다. 사진의 돌비석에 이런 과정이 새겨져 있다.



마을과 마을 그리고 펜션과 펜션들을 지나 드디어 67코스 종점인 송현리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길을 걷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수많은 펜션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시대의 휴양 트렌드가 바뀌어 버린 지금 과연 펜션들의 생존이 가능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67코스 종점인 송현리버스정류장. 정류장 부스 안으로 들어가 휴식 그리고 다음 코스 출발을 준비한다. 우선 식사를 위해 배낭에 담아 온 치킨을 꺼냈다. 양말과 신발을 다시 잘 챙겨 신고 정류장을 나와 다음 코스로 들어갔다.
68코스 21.8km 7시간 30분 보통(1,099.9)

변덕스러운 모양의 서해안선을 다라 이어지는 길로 통개, 파도리, 어은돌 해변을 지나는 해변 길이다.
파도가 낮고 수심이 얕은 '통개해변' 검은 갯바위와 해옥으로 덮인 '파도리해변' 작은 모래사장과 소박한 항구 '어은돌해변' 맛집이 즐비한 식도락여행지 '모항항'
송현리 교차로 건너편에서 도로를 건너오는 한 남자와 마주쳤다. 서로 인사를 나눴다. 송현리가 태어난 곳이고 나이는 57년생인 남자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같이 얘기를 나눴다. 나의 걷기에 관심을 보이고 더하여 자기의 얘기도 줄줄이 펴놓는다. 여기가 고향이고 연금이나 직불금 등 고정적 급여도 있고 통장에 현금도 많고 살만하다. 농사도 힘 안 들이고 집 앞에다 조금만 짓는다 등등...
배낭의 생수통이 비었기에 마을에서 물을 좀 얻을 수 있을까 물으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결국 집 안으로까지 들어가 응접실에 앉았다. 생수통에 물을 채워주고 커피도 끓여준다. 걷기도 좋지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란 당부도 한다. 길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기꺼이 대접해 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송현리 닭띠 남과 30분 넘게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연 이틀간 약 80km를 걸었기 때문일까 오늘은 오전부터 다리가 무겁고 힘들었는데, 이 집에서 잠시 쉬고 나왔더니 발이 편하고 걷는 게 수월해졌다. 기분 좋은 휴식 덕분이리라.



지쳤을까? 눈 앞에 보이는 직선 도로 때문에 해안으로 빙 돌아가는 길이 힘들게만 느껴진다. 이 도로로 직진하면 파도리 해안에 도착하는 지름길이 된다. 지름길을 걷는 것은 이 도보여행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지름길의 유혹이 너무 강하다. 결국 도로를 따라 파도리를 향해 걸었다. 정상 코스로 걸으면 파도리까지 7.7km, 지름길을 걸으면 2.8km이다. 결국 나는 4.9km를 잘라먹었다.



'지쳤을' 나를 '생생한' 내가 만난 곳이다. 파도리 해안에서 다시 만난 서해랑길 코스 리본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해안을 빙 돌아 여기에 도착했으면 많이 지쳐있을 텐데 지름길로 온 덕분에 생생함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 만리포까지 힘든 구간을 여럿 지나야 하지만 오늘의 걷기도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도리波禱里」는 갯바위와 자갈이 많아 거센 파도소리가 그치지 않는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또한 고려 문종 때 이곳은 '파도가 거칠어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뜻의 「난행량難行梁」이란 지명에 연유하여 "파도리"라 부르게 되었다.(태안국립공원)

「어은돌漁隱乭」은 '모항과 파도리 사이를 이어주는 들'이라는 뜻으로 '이은들', '여운돌'로 불리다가 '고기가 숨을 돌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의 한자어 지명으로 "어은돌"로 표기하게 되었다.(태안국립공원)



길을 걷다 '행금이'란 이름을 보고 궁금했다. 행금이? 어은돌해변에서 모항으로 가는 고개 정상에 있는 행금이 쉼터에 도착하여 그 이름의 유래를 알았다. 옛날 사금이 많이 나왔던 곳이다 하여 「생금말」이라 했고, 다시 「생금」으로 불리다 훗날 '이'가 붙어 지금은 "생금이" 또는 "행금이"라 부르고 있다. 생금生金은 금이 나온다는 뜻이다.(태안국립공원)

「모항항」은 태안지역 어업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항구이다. 과거 파도리와 연결되는 길목으로 잡초가 무성한 불모지였으나, 지금은 연근해에서 잡은 물고기와 양식으로 생산한 각종 어패류가 이 항구를 통하여 유통된다.(태안국립공원)


만리포萬里浦해수욕장. 길이 약 2.5km의 만리포해수욕장은 태안 8경 중 4경이며, 서해안 3대 해수욕장 중 하나이다. (3대 해수욕장은 대천, 변산, 만리포이다) 만리포의 어원은 조선 때 중국 사신을 배웅하며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4시 조금 못되어 만리포에 도착했다. 오늘 걷기는 끝이다. 해안 상가 지역으로 가 숙소를 잡았다. 모텔 프런트에 주인은 없고 전화번호가 남겨져 있다. 외출 중이니 방 번호를 알려주며 들어가 쉬고 있으라 한다. 방으로 들어와 배낭을 내려놓고 침대에 기대어 내일은 어떻게 움직일까 고민하다 집으로 가는 교통편을 검색하다 지금 출발하면 6시간이 걸린다는 결과가 검색되었다. 만리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천안역으로 가서 열차를 이용하는 경로다. 오늘 철수한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4. 4)은 헌재 판결이 있고 모래(4. 5)는 비 예보가 있어 일정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집으로 가자. 벌떡 일어나 배낭을 매고 모텔을 나와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모텔 사장님께 전화했다. "미안합니다, 일정이 변경되어 오늘 못 자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