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102-103코스(MRT9-7)길 끝에 서다.
2025년 5월 5일(월) MRT9의 일곱 번째 날이자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평소와 달리 아침식사를 하고 싶었다. 외포리 포구로 내려가 어제 청국장을 먹은 식당을 다시 찾았다. 다시 청국장을 주문했고 나는 천천히 아침식사를 했다.
마지막이 처음을 돌아다본다. 서해랑길 걷기의 첫 기록은 <출발은 힘들다>란 제목으로 <2024년 12월 9일 아침이다.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 7시 30분에 현관문을 나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기록될 한 아픈 장면이 거센 파도로 몰아칠 때 해남을 출발했고, 5월 5일 오늘, 내가 있는 곳은 강화도 외포리이다. 이제 102, 103 코스가 남았고, 평화전망대에서 강 같은 바다 건너 북녘을 바라보아야 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걷기 여행자는 집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서해랑길 102코스 10.9km 4시간 보통
역사가 깃든 문화유산과 서해안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코스이다. 비무장지대인 강화 최북단의 작은 포구 '창후항' 한양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망양/망월돈대'
석모도는 강화군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섬으로 수도권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이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관음성지로 유명한 보문사에는 눈썹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음좌상이 유명하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일품이다.(한국관광공사)
돈대(墩臺)는 성곽 시설의 하나이다. 평지에 있는 성에서는 보통 가장 높은 평지에 높게 축조했으며, 해안에 있는 성에서는 적들이 침입하기 쉬운 요충지에 주로 설치했다. 외부는 성곽으로 축조되어 있으나 보통 내부에는 군사 시설이 들어서서 포를 쏘거나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 53개가 설치됐다. 위 사진이 그 돈대들이다.
농로를 걷다 벼농사를 위한 논의 변화를 한번에 다 볼 수 있었다. 벼를 베어낸 추수 후 그대로의 논, 봄이 되면 로터리 작업으로 논을 갈아엎고 물을 댄다. 그리고 '논을 삶는다'라고 하는 작업을 한다. '논 삶기'는 모를 심기 위해 트랙터로 흙을 부드럽고 평평하게 하는 작업이다. 나는 이 말을 홍천에서 처음 들었는데, 그 표현이 재밌어 기억하고 있다. 논 한켠 모판에서 볍씨가 싹을 틔워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5월 중순이 되어 이 모을 이양기로 논에 심으면 모내기가 완료된다. 이제 논일의 90% 이상은 기계가 한다.
창후항에 도착했다. 한반도횡단울트라마라톤의 출발점 표지석이 보인다. 2010년 전후의 시절에 초장거리 울트라마라톤이 성행했다. 여기 표지석에 있는 '강화-강릉' 뿐 아니라, '해남-고성', '부산-강화' 등 국토를 종횡하는 울트라마라톤대회가 전국에서 개최되었다. 인간 한계에 도전, 자기 극복, 인간 승리 등 여러 서사가 알려져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도로변을 달리던 주자가 수면 부족으로 사고를 당하는 불상사도 많았다. 아무튼 요즘은 이런 초장거리 울트라마라톤을 달리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종목은 철인삼종경기로 옮겨갔다.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창후항에 도착했다. 102코스의 종점이자 103코스의 출발점이다. 나는 해남에서 출발하여 영암, 목포, 무안, 신안, 함평, 영광으로 이어지는 남도 길을 걸었다. 전라북도 고창, 부안, 김제, 군산을 통과했고, 충청도에서 서천, 보령, 홍성, 태안, 서산, 당진, 아산을 걸었다. 길은 수도권으로 이어져 평택, 화성, 안산, 인천, 김포를 지났다. 그리고 지금, 강화도 창후항에 서 있다.
우리나라 서쪽의 해안과 항구, 도시와 마을, 산과 강, 논과 밭, 방조제와 호수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길다면 길수도 있는 그 길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내 초라한 기억 공간 한켠에 둘 수 있어 다행이다. 길이 있어 그 길을 걸었다. 그것 외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해랑길 103코스 12.6km 5시간 어려움
갈 수 없는 땅과 건너지 못하는 바다를 바라보며 분단의 아픔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코스이다. 비무장지대인 강화 최북단의 작은 포구 '창후항'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
청년시절 군 복무 때 경계근무를 했던 곳과 꼭 닮은 철책이 나타났다. 내가 다시 근무교대를 하러 가는 초병이 된 기분이다. 서해랑길을 걸어오며 종종 보았던 철책이나 철조망과 달리 지금 여기는 현실이다. 경계 부대가 주둔하고 초병들이 교대로 경계 근무를 서는 멈춰진 전쟁의 최전선이다.
성덕산 입구 안내판에 선녀바위, 장군바위, 두꺼비바위가 있는 곳의 거리를 표시해 놓았다. 산을 올라가면서 관심을 두고 바위들을 보았다. 각각의 위치는 확인했지만 작명과 바위모양이 그리 어울려 보이진 않는다. 강화도 서해랑길의 마지막 산을 지키는 바위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걷는다.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 Northern Limit Line, NLL)은 1953년 8월 30일,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가 설정한 경계선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서해 및 동해 접경 지점의 한계선이다. 이는 남한의 함정 및 항공기가 초계활동을 할 수 있는 북방한계를 규정한 것이다. 남북 양측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무력 충돌을 방지한다는 정전 협정의 실질적인 이행에 목적을 두고 있는 사실상의 해상경계선이자 군사 분계선이다.(나무위키 발췌)
왠지 맘이 불편한 평화전망대를 나와 강화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로 내려왔다. 버스정류장에서 쳐다보니 강 같은 바다가 여기와 저기를 가르며 흐른다. 북녘의 산천에서 흘러나온 강과 남녘의 산하를 흐르는 강이 합쳐져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 큰 물이 되었다.
관공서와 도서관의 문서들은 NLL이니 북방한계선이니 규정하고 있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과 바다엔 그런 표시나 구분이 없다. 물고기는 이 기슭 저 기슭으로 헤엄치고, 새들은 쉴만한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이 내려앉는다. 여기 농부들이 모내기할 준비에 바쁘듯이, 저기 농민들도 논을 갈고 모 심을 준비에 바쁠 것이다. 철쭉이 장소를 가려 피겠는가?
우리 시대는 어렵겠지만 언젠가 머지않아 여기 평화전망대가 나루터가 되어 배를 타고 개풍으로 소풍 가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서해랑길에 관한 한 모든 것이 끝났다. 시원하고, 아쉽고, 부끄럽고, 뭉클하고, 고맙다. 이렇게 우리 땅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보다 앞서간 어느 여행자가 길가에 걸어놓은 리본의 글귀가 생각난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그 문구에 크게 공감했다. 그렇다, 걸을 수 있다면 걸어야지.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냥 걷고 싶다.
코리아둘레길은 총길이가 약 4,500km이다. 해파랑길, 남파랑길 그리고 서해랑길을 걸었다. 이제 남은 것은 DMZ 평화의 길이다. 그 길마저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에, 언젠가 불쑥 길을 나설 때는 마음이 텅 비어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