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에 들어서다(해파랑길 1코스)
20220316(수) 걷기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몸을 맡기면서 신성함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강요된 걷기는 개인적 시련이자 역경의 표시이다. 그렇다면 자발적 걷기는 무엇인가? 개인적 자유와 행복의 발현인가?
아무리 멋져도 자기만의 정원과 농장에 갇혀있는 사람은 '내 것은 없어도' 대자연을 거닐며 그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사람보다 나을 수 없다. 내 것이 없이 전부 내 것이다. 이런 소유는 그 어떠한 대가도 요구되지 않는다. 인간이 제한할 수 없는 자유이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총 50개의 코스로 이루어진 770km의 걷기 여행길로,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 길’을 의미한다. 어제(20220315) 해파랑길 첫 코스를 걸었다. 오륙도(용호동)에서 해운대해수욕장까지이다. 약 17.5km.
‘나는 왜 걷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시시콜콜한 걷기의 여정보다는 ‘왜?’가 중요할 뿐이다.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770km를 왜 걸어서 갈려고 하는 것일까?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언젠가의 죽음 앞에 있는 모든 인간이 그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궁극적인 답은 그것이지 않을까? 걸어보자 무작정, 딱히 해야 할 일도 또 할 일도 없지 않은가?
다음(2코스)은 해운대에서 대변항까지이다. 14.6km, 해운대-청사포-송정-해동용궁사-대변항까지 오늘은 쉬고 내일 또 길을 나설 것이다. 일단 울산권까지는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출퇴근 형식으로 코스를 걸어 나간다. 이후의 구간에 대해서는 별도의 걷기 계획을 세워야겠다.
이기대길 해식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데크길을 걸을 때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공기를 흔들고 있고, 저멀리 동해의 수평선과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갯바위와 파도는 감탄을 자아낸다. 바다 속을 들여다보니 여 주위만 짙은 갈색의 해초가 자라고 있었고 나머지 바닥은 허옇게 아무것도 없다. 백화현상으로 물속의 해초와 산호가 죽어 그런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고서야 그것이 모래바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역주민에게 지금 해안에 백화현상이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양생물이 살 곳이 없다는 뜻이니 걱정이다. 힘든 일이지만 바다가 잘 풍성하게 잘 보존되도록 노력해야 하리라.
이기대 지역을 지나 광안리에 이르렀을 때 시간은 거의 1시 30분을 지났다. 약간 허기를 느꼈고 따듯한 국수나 우동, 아니면 김밥집 같은 곳에서 간단한 요기를 할 생각으로 식당을 찾으며 해수욕장 거리를 걷는다. 해변도로 상가 2층에 중국집이 보여 우동을 먹을 요량으로 들어갔다. 백종원의 홍콩반점이라고 간판이 붙어있다. 그런데 메뉴판에 우동이 없다 그래서 볶음밥을 주문하니 그 역시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지. 속이 좀 쓰릴지 몰라도 짬뽕을 주문한다. 맛은 형편없지만 밖을 보니 경치는 훌륭하다. 유럽의 지중해라도 해변에 이렇게 멋진 경치를 가진 ‘짬뽕집’이 있을까?
헨리 데이빗 소로는 ‘월든’에 이렇게 썼다. “11월의 어느 날 , 우리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석양을 맞았다. 나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초원을 걷고 있었다. 마침내 태양이 잿빛의 싸늘한 하루를 마감하고 모습을 감추기 직전에 지평선의 맑은 층에 도달할 때였다. 그러자 가장 은은하면서도 환한 아침의 투명함이 건조한 풀밭에, 맞은편 지평선에 있는 나무들 꼭대기에 그리고 언덕 비탈에 있는 초록색 떡갈나무 잎에 떨어졌다(······). 우리는 풀밭과 마른 나뭇잎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너무나도 맑고 순수한 빛 속을 걸었다. 빛이 너무나도 은은하고 청명해서 수면에 최소한의 살랑거림도 잔물결도 하나 없는 그런 황금물결 속에서는 한 번도 미역을 감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화가 세잔은 1870년 대 널리 퍼져가는 건축 산업 때문에 장소가 지닌 아름다움이 사라진다고 느꼈고 그로부터 30년 후 이렇게 말했다. “잘못되어가고 있다. 무언가를 더 보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다.”
길 위에서
함허
산 아래 한 줄기 길이 있어라
끝없는 봄 빛 눈앞에 환한데
산 그림자 속 흰꽃 붉은꽃 피어있네
걷고 또 걸으면서 하늘도 보고 땅도 보네
▷함허(1376 - 1433) 조선 초기의 승려. 무학대사의 수제자로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