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13 (고성 배둔 - 통영 황리)
남파랑길 13코스는 배둔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마동호를 지나 거류초등학교, 화당마을을 통과 통영황리사거리까지의 20.9km에 이르는 길이다. 걷기길 대부분이 해안가를 따라 이어져 있어 경치를 감상하기 좋고 바다와 산, 논과 밭이 어우러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그러나 화당리 해안로를 따라 걷다 도로가 끊기고 산허리를 둘러가는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 길은 해안가의 성동조선조를 빙둘러 고성에서 통영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성동조선소와 조선 관련 제조업 공장이 주를 이루는 안정공단을 통과하면 종착지 황리사거리에 도착한다.
아침, 모텔을 나와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길손임을 알아본 편의점 여주인은 어젯밤 숙소가 어땠냐고 묻는다. 숙소를 문의하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무리 시골 모텔이지만 어제밤 숙소 사정은 너무 열악했다. 난방도 전기장판이 전부지만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다. 그 외 편의시설은 말할 것도 없다. 프런트에 전화하니 오늘은 안되고 내일 아침에 물 데운다고 미안하지만 그냥 주무시란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네"하고 그냥 잠을 청했다. 모텔이 있는 5층 건물의 객실은 3층부터인데 2층에 노래방이 있다. 어라 노래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진다. 참 좋은 여관 아닌가?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나서려는데 여전히 욕실에 더운 물은 나오지 않는다. 별수없지, 고양이 세수 후 배낭을 지고 여관 문을 나섰다. 주인을 만날까 두려워 조용히 빠져나왔다. 이것도 추억이지.
남파랑길 13코스의 길은 고성군 동해면 내곡리와 외곡리로 이어진다. 이곳은 여느 시골마을과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주변에 바다가 있고 구절산(546m)과 거류산 사이의 너른 들판에 자리하여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여기 인심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주변 풍광만으로 보면 살기에 좋은 곳이리라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마을의 집들과 골목을 통과하고, 논밭 사이 농로를 통과하며 고성 거류면으로 남파랑길은 이어지는데 그리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지나는 나그네로서는 마음이 흡족하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외지인들이 들락거리니 그게 싫어 남파랑길 통과를 반대하진 않았을까?
남해바다는 소박하고 포근하며 아늑하다. 섬이 둘러싸고 만으로 이루진 지형이기에 잔잔하기가 호수 같다. 작년에 걸었던 해파랑길은 동해를 끼고 걷는 길이다. 동해 바다가 얼마나 사납고 거칠었는지는 이 곳 남해를 걸으며 절실히 느낀다.
거류면 읍내를 통과하여 화당리 해안 방조제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사진에 보이는 길이 찾아들어가는 곳이 면화산(413m)이다. 저 앞 능선에서 고성과 통영의 군 경계가 나누어 진다. 능선에 다다르면 포장도로가 끊기고 길은 임도로 바뀐다. 일반인들은 잘 찾지 않을 그런 길이다. 면화산 자락 임도를 따라 열심히 걷다보면 통영에 자리한 거대 조선소 성동조선소가 나타난다. 남파랑길은 해안에 위치한 성동조선소(중형선박 건조 세계1위) 뒷편을 돌아 안정일반산업단지로 내려서고 산업단지가 끝나는 지점이 바로 13코스 종착지인 황리사거리이다. 오후 2시가 거의 되어 종착지에 도착했다. 어제부터 계속 걷다보니 이제 발과 다리가 상당히 피로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집으로 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터 오늘은 여기서 걷기를 끝낸다. 통영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아침 식사도 못했는데 점심 먹을 곳 역시 마땅치 않다. 그냥 가자.
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일과이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