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남파랑길 76 (고흥 신기 - 보성 선소항)

로드워커 2023. 5. 12. 10:49

2023년 5월 10일(수) 이번 여정의 3일 차 날이다.
벌교읍 11도, 구름 많음. 오후가 되면 25~26º까지 올라간다는 예보다.
 
오전 5시 30분 벌교역 앞 대도여관에서 기상했다. 배낭을 메고 여관을 나서는데 입구에서 화분을 돌보던 여관주인이 이렇게 일찍 걸으려 나가시냐며 아는 체를 한다. 덕분에 편히 쉬었다고 인사를 하고 벌교역 앞 거리로 나간다.
 
어제의 종착점 대서면 신기수문동정류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벌교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탈 궁리를 한다. 길가에서 집 앞 거리 청소를 하는 어르신께 여기가 신기 방향 버스 타는 곳이 맞냐고 물었더니, 직접 벽에 붙은 시간표까지 확인해 주신다. 여기가 맞다. 기다리면 될 것 같다. 시간은 충분하다.
 
길 건너 김밥집이 보여 들어간다. 2줄을 주문하여 한 줄은 먹고 또 한 줄은 배낭에 넣었다. 공사장으로 일하러 가시는 분들의 단골집인 모양이다. 

벌교역 앞 거리와 버스정류장

그런데 인연이긴 한 모양이다. 7시, 신기 방향 버스에 올랐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한다. 아! 어제 아침 과역터미널에서 함께 버스를 놓친 부부 여행객이 미소를 머금고 눈인사를 한다. 나보단 먼저 길을 갔을 텐데 결국은 여기서 또 만나는구나. 아무튼 반가웠다. 버스는 시골 마을 여기저기서 손님을 내려주고 태우고 그러면서 신기 수문동 정류장을 향해 달린다. 7시 45분 우리는 해변에 하차했다.

남파랑길 76코스(16.7km: 신기수문동버스정류장 - 선소항 입구) ★★

남파랑길 76코스는 길이 13.9km로 약 5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쉬움'의 길이다.
 
두루누비에서는 「고흥군과 보성군이 섞여있는 구간으로 득량만 일대의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코스, 노선 곳곳에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안정성이 확보되는 코스」라 소개하고 있다.
 
관광포인트로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단층대와 숭어바위, 광활한 갯벌 등으로 아름다운 '안남어촌체험마을',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장선해변', '득량만생태공원'이 있다

신기마을

길을 이렇게 걷는다. 신기 수문동 출발 - 장선해변 - 득량만풍광 휴식센터 통과 - 장선마을 - 보성·예당방조제 - 금능항 - 해평항 -  사계절바다펜션 - 청암마을 - 보성비봉 공룡공원 - 청암선착장(오류가 있는 듯하다. 76코스 종점 입간판은 선소항이 아니라 이곳 청암선착장 비봉마리나 앞이다)

길1, 장선마을 앞
방조제
▲남정수상태양광발전소, 현황판을 보니 현재발전량, 금일발전량, 누적발전량, 일사량, 외기온도, CO2저감량 등이 표시되어 있다.
고흥과 보성의 경계이다. 드디어 기나긴 고흥 남파랑길(214km)을 지나 보성으로 진입한다. 안내판 바로 밑에서 공공근로 작업(화단 잡초 제거)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께 고흥의 맨 끝에서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다고 농담을 건넸더니 맞다고 웃어 주신다.
길2, 뒤에 보이는 산이 오봉산(343m)이다
보성의 녹차해안도로가 방조제에서 시작한다, 위 사진은 예당습지생태공원의 모습
▲감자밭, 바다 건너 반대편 고흥은 온통 마늘밭인데 이곳 보성은 온통 감자밭이다. 아마 수미감자 대량 생산지인 모양이다.

※ 수미감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자 품종으로 국내 감자 수확량의 80%를 차지한다. 겉껍질은 연한 노란색이며 그물 모양의 줄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산지는 미국이며, 국내에는 1975년에 도입되었다. 수미감자는 알이 단단하여 저장성이 높으며, 당분이 많고 맛이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또 쫀득한 맛이 나는 점질 감자인 수미감자는 녹말 함량과 섬유질이 많다. 주로 조리해서 반찬으로 먹거나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

▲보성비봉공룡공원, 비봉리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인 약 1억년 전 공룡들이 알을 낳았던 산란지이자 세계적인 규모의 공룡알 화석지이다.
76코스 종점 선소항 입구
길3, 녹차해안도로

고흥을 떠나며... '"잘 있으시오 고흥, 저는 갑니다"
 
아주 오래 전 어둔 밤에 도착해서 아침 일찍 떠난 상가 조문 길 외는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곳이 고흥이다. 그 후로도 차를 타고 온 적도 없었다. 우리나라 남쪽 끝의 오지란 생각이 고흥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의 '오지' 그 고흥을 남파랑길을 걸으며 잠깐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 행운이라 생각한다. 
 
고흥의 농부들은 논에 모를 심고 밭에 씨를 뿌리고, 또 어부들은 그물을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갈 것이다. 들의 아낙은 마늘을 수확하고 콩을 심을 것이며, 갯가의 아낙은 뻘배를 타고 꼬막을 캐러 뻘로 나갈 것이다. '어머니는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서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린다'는 노랫말이 왠지 어울릴 것 같은 고흥. 물론 지금 세상은 그런 감상적인 표현이 가당치 않겠지만 그랬으면 한다는 기대감도 있다.
 
간천마을에서 생수병를 채워주신 노인, 과역시장에서 오이를 그냥 주신 야채가게 여주인, 남열리 민박집 넓은 방을 보일러로 밤새 덥혀주신 주인 아주머니, 차를 멈추고 같은 방향이면 태워주겠다던 소형차 운전수, 지나가는 길손을 불러 커피와 참외를 주신 대곡리 주민들, 기산 버스편을 친절히 확인시켜 주시는 벌교 읍내 어르신과 길에서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신 고흥의 사람들 모두가 나에겐 아름다운 고흥의 사람들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 아름다운 고흥이다. 우리네 모든 시골이 그렇듯... "안녕히계시오, 고흥. 저는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