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85 (사초리-남창정류소)
남파랑길 85코스는 사내방조제에서 해남 남창정류소까지 18.6km의 길이에 6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난이도 쉬움의 길이다.
남파랑길 홈페이지 두루누비에서는 「사내방조제를 지나 해남의 두륜산을 조망하며 해안을 따라 걷는 구간으로 '해남 삼남길'이 포함된 코스, 해남군의 두륜산과 남해안 바다 조망이 가능하며 걷기 여행 안전성이 확보되어 안전하게 걷기 여행을 즐길 수 있음, 완도군 코스와 연결되나, 완도군 코스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다음 해남군 구간을 이어 여행할 수 있음」라고 소개하고 있다.
길은 이렇다. 사내방조제 북쪽 교차로(사초해변공원) 출발 - 해남내동리 밭섬고분군(3.3k) - 내동마을(5.0k) - 만수마을(11.0k) - 와룡마을(12.7k) - 오산어촌체험마을(15.6k) - 북평초등학교(17.7k) - 해남 남창 정류장(18.2km) 도착
2023년 5월 18일(목) 강진읍 터미널 부근 여관, 새벽 4시 30분에 눈을 떴다. 왜 이리 일찍 잠이 깼나? 비가 온다는 예보와 사초마을로 버스를 타고 다시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새벽같이 눈을 뜨게 한 것 같다. 여관 창문을 열어보니 어둠 속에서 빗소리가 제법 세게 들린다. 비는 하루 종일 아니, 내일 새벽까지 내린다고 한다.
남파랑길 마지막 여정 4일째 날이다. 새벽부터 눈을 떴으니 아침 첫차(6시25분)를 타고 사초마을로 가자. '닥치고 걸어' 다.
5시 비 내리는 강진읍의 새벽 거리로 나왔다. 터미널편의점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다. 거리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니 또 맘에 갈등이 생긴다. 아니야 이번엔 끝내야 해 모든 게 편하게 여행하듯 되는 게 아니야. 마지막 고비란 것도 있잖아. 그렇게 마음을 다졌다. 아직은 새벽이 어울리는 시간, 넓은 대합실엔 광주 가는 노부부와 청소하는 할머니 한분이 전부다. 썰렁한 대합실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이제 산 두 개만 넘으면 끝이다. '완도'와 '땅끝'이다. 숙제는 거의 끝나간다. 힘내자.
사초리에 버스가 도착했고, 출발 준비를 하려 정류장으로 들어갔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인사를 했더니 "인사를 받긴 했는데 모르는 사람이네"라 하신다. "아! 네, 이 동네 사람 아닙니더." 타고 온 버스는 이 마을이 종점이라 다시 돌아왔고 두 분은 버스를 타고 떠났다. 나도 길로 떠나기 위해 배낭에서 어제 사둔 우의를 꺼내 뒤집어쓴다.
새벽에 일어나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심란했던 마음은 마을 들판의 세찬 바람과 비를 뚫고 방조제로 향하는 순간까지였다. 드디어 방조제 위 남파랑길 85코스로 진입했을 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잠깐 사이에 신발은 이미 젖었지만 방조제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왼편은 둑이 오른편은 방풍림이 바람을 막아주었고 곳곳에 핀 짤레꽃이 향기로 인사를 건넨다. 그래 즐기자 이 빗속 걷기를. 물 먹은 풀들이 싱그럽게 잎새를 뻗치듯 내 몸의 기운이 살아난다. 얼마 후 해남 경계 표지판이 나를 반겼다. "어서 오시오, 친구"
사내방조제의 3분의 2쯤, 해남 경계판을 지나면 배수갑문과 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 승두섬 유래비가 있다. 작지만 멋스러운 모양을 한 돈나무(?)가 유래비 뒤를 받치고 있다.
《승두도(升斗島)는 넓이 600평 정도, 높이 20m 정도의 작은 섬으로, 섬을 중심으로 연안에 개불, 낙지, 굴, 바지락, 꼬막 등 해산물의 주 서식지로 유명하였다. 지명은 되 승(升), 말 두(斗)를 따서 '곡식을 재는 그릇과 같다' 하여 승두섬이라 명명하였으며, 1990년 사내 간척공사로 대규모 농지가 조성되고 이 자리에 배수갑문이 설치되어 섬의 자취가 없어졌기에 그 유래를 길이 보존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2003년 12월 북일면장/ 내동리 노인회》
빗속을 걸어 나간다. 점심때쯤엔 85코스 종점인 북평면 남창정류소에 도착할 것이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린다. 차량에 주의를 기울이며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드디어 머리가 자기 합리화의 시동을 건다. '이 빗속을 걸어 완도항까지 가는 것은 무리야, 무모해, 무슨 의미가 있어?', '사고 나기 십상이야' 등. 그래 그렇지. 나도 마음이 움직인다. '무사히 안전하게가 최고지'. 결정을 내렸다. 남창정류소에 도착하면 86코스는 버스로 이동하자. 완도항에 도착해서 오늘은 푹 쉬는 거야.
11시 50분경 비를 뚫고 남창정류소에 도착했다. 버스 편부터 확인한다. 완도 가는 버스는 1시간 꼴로 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중국집을 찾으니 거리 끝에 '중국관'이란 중식당이 하나 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식당 안이 만원이다. 일단 처마 밑으로 가서 우의를 벗고 기다린다. 이제는 남는 것은 시간뿐이니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손님들이 꽤 빠져나간 후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 짬뽕 주세요" 혼자라고 거절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부드러운 말투로 주문을 하고 식사를 했다. 시골식당은 혼자면 거절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손님이 많은 게 비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짜장면 4천 원, 짬뽕 5천 원이다. 맛도 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터미널로 이동, 완도행 버스에 오른다. 걸어가야 할 길을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금세 잠이 들었다.
완도항, 전망이 좋아 보이는 '해비치'란 모텔에 방을 잡았다. 젖은 것들을 방바닥에 펼쳐놓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또 잠이 들었다. 밖은 어둑하지만 시간은 아직 대낮이다. 내일은 해가 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