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89, 90코스 (땅끝에 도착하다)
'땅끝' 막상 그곳에 서니 생각했던 것 같은 감흥은 생기지 않았다. 부산 오륙도에서 남쪽 해안선을 따라 '땅끝'이라 일컷는 해남까지 걸어가는 여정 그 자체가 의미였다. 남도의 길에서 본 풍경과 사람들이 좋았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아마 다시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그 길은 가뭇가뭇 옅어지는 추억이 될 것이다. 무엇이 되었건 '끝'이란 허탈하고 공허하다. 2023년의 거창한 봄나들이는 끝났다.
2023년 5월 20일 토요일 아침이다. 부산서 해남, 남파랑길 걷기의 마지막 날이다.
남파랑길 89코스는 원동버스터미널에서 미황사 천황문까지의 13.8km의 길이에 약 4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보통의 길이다.
남파랑길의 코스는 원동버스터미널 출발 - 완도대교 서단(0.7) - 달도 지구 테마공원(1.7) - 남창시장(3.6) - 남창사거리(4.2) - 산마마을 뒤편(8.4) - 달마산(498.8m) 진입 - 미황사 천황문(13.8km) 도착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걷는다. 오늘 하루 두 코스를 걸어 땅 끝에 도착해야 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성 율포해수욕장에서 자동차가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까지도 못 가면 실종신고를 당할지도 모른다.
오전 5시를 조금 넘겨 터미널 옆 여관을 나섰다. 남파랑길 걷기의 마지막 길들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완도대교와 그 너머의 해남 땅에 걸쳐있다. 달마산(498m)과 연포산(418m)이 지척인 것처럼 보인다.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오전 5시 50분 원동터미널을 출발한다. 완도대교를 건너 달도를 지나면 해남군 북평면이다. 여기서부터 코스와는 다르게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간다. 남창버스정류장에서 6시 35분 농어촌버스를 탔고, 얼마 후 월송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도로를 따라 미황사까지 걷는다. 8시 40분, 89코스 종점 미황사에 도착한다.
남파랑길 90코스는 미황사에서 땅끝까지의 13.9km의 길이에 약 7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어려움의 길이다.
두루누비에서는 「해남군 핵심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는 달마산의 '달마고도'를 지나 국토의 최남단 '땅끝'까지 걷는 코스, 동해안 탐방로의 시점인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한 남파랑길의 종점 구간으로 땅끝 전망대와 땅끝비가 설치되어 있어 여행의 종착점, 혹은 출발점으로서의 상징성을 보유함, 숲길 구간에서 국토 최남단에서 볼 수 있는 해안풍광을 감상할 수 있으며 전 구간이 걷기 여행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음」이라 소개되어 있다.
오전 9시경, 미황사를 출발하여 '땅끝'을 향해 걸음을 뗀다. 길은 달마산의 '달마고도'를 걷다가 연포산 산길로 연결된다. 연포산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끝까지 걸어내면, 시야가 트이면서 해남의 바다와 땅끝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땅끝 전망대까지 오르내리는 산길이 계속되고 마침내 도착한 땅끝 전망대에서 데크로 만들어진 계단을 내려가면 해안 절벽 위 그곳에 '땅끝'을 알리는 뾰족한 탑이 있다.
북위 34도 17분 32,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땅끝탑이다.
이틀 전 비로 숲은 상쾌하고 촉촉하며 길은 부드럽고 폭신하다. 그런데 여태 걸어본 길들과 뭔가 다르다. 사람 손이 많이 들어갔지만 자연 그대로를 살린 훌륭한 트레킹 코스다. 산 아래에서 가져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길은 울창한 나무들 아래로 겸손하게 나아간다. 조화롭다는 표현이 이런 숲길에도 딱 맞아떨어진다. 길은 숲과 하나가 되어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컴컴할 정도로 편백이 빽빽한 숲을 지날 땐 짙은 향에 취하고, 활엽수들이 늘어선 숲길은 나뭇잎을 통과한 햇살이 길을 비추고 산들바람이 걷는 이를 시원케 한다.
길이 왜 이리 맘을 끄는지 그 이유가 있었다. 해남 안내서를 보니 "달마고도, 빼어난 산세와 다도해의 절경이 어우러진 달마산에 조성된 17.74km의 둘레길이다. 한국의 산티아고라 불리는 달마고도는 땅끝의 아름다운 생태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주변 돌을 채취해 석축을 쌓고, 중장비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곡괭이, 삽, 호미 등 사람의 힘으로만 완성한 남도대표 명품길이다."라 적혀 있다.
달마고도는 출가, 수행, 고행, 해탈의 길로 4등분 해 불린다. 내가 걷는 것에만 열중하고 사전지식 습득에 등한했음을 느낀다.
땅끝탑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마을로 들어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땅끝항 여객터미널 앞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해남읍으로 가야 한다. 해남터미널에서 보성터미널로 그리고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율포로...
밤 10시, 오랜만에 현관문 번호키를 눌렀다.
'땅끝' 막상 그곳에 서니 생각했던 것 같은 감흥은 생기지 않았다. 부산 오륙도에서 남쪽 해안선을 따라 '땅끝'이라 일컷는 해남까지 걸어가는 여정 그 자체가 의미였다. 남도의 길에서 본 풍경과 사람들이 좋았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아마 다시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그 길은 가뭇가뭇 옅어지는 추억이 될 것이다. 무엇이 되었건 '끝'이란 허탈하고 공허하다. 2023년의 거창한 봄나들이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