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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39코스(Tour4-Day4) 구수산, 백수해안 그리고 법성포

by 로드워커 2025. 3. 3.

39코스 16.3km 6시간 30분 어려움(635.8)

서해랑길 39코스도

  2025년 2월 28일(금) 영광읍내 한 모텔에서 기상했다. 4시 40분이다. 6시 쯤 모텔을 나와 편의점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군내버스차고지로 향했다. 어제, 버스터미널에 부착된 군내버스시간표를 보고는 '답동' 가는 버스 편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영광교통'에 전화하여 답동 가는 첫 차를 확인해 두었다. 첫차는 버스차고지에서 6시 40분에 출발한다.(첫차는 버스터미널을 경유하지 않는다) 간 밤에 약한 비가 내렸다. 어둑한 거리는 촉촉이 젖어있다.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을 듯하다. 

영광종합병원 앞 버스정류장

  버스차고지 앞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각각 다른 노선으로 가는 첫 차들이 줄지어 나오는 게 아닌가. 내가 타야 할 버스를 놓칠 수도 있다. 버스를 놓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긴장해서 지켜본다. 덩치가 조금 작은 버스, 저 차다. 38분, 어둠을 가르고 다가오는 버스에 손을 들었다. "기사님, 답동 가죠?" 다행히 타라고 손짓을 한다. 대단한 일을 이뤄낸 기분으로 버스에 오르니 기사분 왈 "바로 가는 거 아닙니다". "네, 그렇지요" 택시도 아닌데 바로 갈 턱이 없지 않은가. 난 속으로 대답했다. '기사님, 전혀 관계없습니다, 영광을 온통 뺑 둘러가도...'

답동을 향해 출발한 군내버스

  버스는 출발했다. 읍을 벗어나자 '이건 택시야'라는 생각이 머리에 꽂혔다. 넉넉한 실내 공간과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 훌륭한 대절 관광택시다. 차에는 기사와 나, 둘 뿐이다. 마을을 지나고 해안을 달리고 아침의 영광 이곳저곳을 달린다. 물론 이른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정차로 목적지를 향해 간다. 요금은 1000원이다.

답동에 나를 내려주고 떠나는 버스, 탱큐
서해랑길 39코스 입간판 앞에 서다. 7시 30분 출발
답동 정류장 앞, 여기서부터 39코스가 시작된다
구수산 입구

  구수산 코스를 걷는다. 봉화령까지 가진 않고 봉우재 - 가자봉 - 뱀골봉을 거쳐 산을 내려가면 정유재란 열부순절지가 나온다. 그곳까지가 구수산이고 코스는 백수해안도로로 이어진다. 간밤에 옅게 내린 비로 산속은 상큼하기 그지없다. 흐린 날씨지만 쌀쌀한 느낌은 없다. 몸에선 따뜻한 기운이 솟아난다.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구수산 산길을 걷고 있다. 어제의 황량한 벌판과 콘크리트 길을 걸어온 수고에 대한 보상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힘든 일을 견뎌내면 좋은 일이 생기고 그런게 인생 아니던가. 

  구수산 초입,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막대기 하나를 주워들었다. 구수산 신령님이 산길 잘 가라고 내게 주는 선물 같다. 단단함, 길이, 굵기, 생긴 모양이 지팡이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날 것의 지팡이는 집까지 따라왔다. 좀 다듬어 서해랑길 동반자로 써 볼 생각이다)

길 39, 영광 구수산

  구수산에 찬사를 보낸다. 길은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낙엽이 섞여 바닥에 깔리고 양념처럼 솔방울도 흩뿌러져 있다. 어제 내린 비로 먼지도 나지 않는 바닥은 페르시아 궁전의 양탄자 보다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걷는 이를 받아준다. 지팡이를 집고 걸으니 '반지의 제왕'의 마법사 같은 기분이 든다. 어제의 피곤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발과 다리 어디 한 곳도 불편함을 느낄 수 없다. 해남을 소환했다. 솔라시도 다리까지의 영산강 강변길을 서해랑길 최고의 코스로 메겼으나 이제 그 순위를 바꾸어야겠다. 영광의 구수산 산길을 1위로 등극시킨다. 또 다른 길이 나타나 순위가 바뀔진 몰라도 현재 1위는 구수산길이다.

흔적이 되어가는 봉화대

  걷기가 끝나고 그 땅을 떠나면 오래지 않아 내가 지나온 마을, 하천, 포구, 산의 이름은 쉬 잊혀진다. 지역의 명소라 해도 어지간한 곳은 곧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이곳 구수산은 나의 기억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왜냐면 나는 이 산을 영광의 '구수한 숭늉' 같은 산이라 기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광하면 구수한 숭늉 같은 산, 구수산을 떠올릴 것이다. 산 저 아래 농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었는가?

땅을 뚫고 나온 봄 새순들과 곧 초록옷을 입을 부처손

  구수산을 내려왔다. 백수해안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전망데크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오전 참을 먹었다. 어제 모텔에서 주문한 치킨이다. 점심까지 해결하기에도 충분히 남아있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속세로 들어가 보자.

정유재란 열부순절지

  이 곳은 정유재란 당시(1597년) 함평 월악 등에 살던 동래정씨와 진주정씨 문중의 부녀자들이 절개를 지켜 죽은 곳이다. 왜적에게 잡히자 대마도로 끌려가 치욕을 당하느니 의로운 죽음을 결심하고 모두 칠산 앞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백수해안도로 노을전망대

  역시 속세는 훌륭하지 않다. 노을전망대 부근에서 갯벌 어장을 두고 주민 몇몇이 쌍소리를 해가며 다투고 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지나가는 차 소리와 섞여 그야말로 소음이다. 다행히 노을광장을 벗어나면, 해안도로를 따라 조성된 데크 길로 코스가 이어지기 때문에 차도를 걷진 않는다. 데크길은 대신항까지 이어진다. 갯벌과 바다를 바라보며 무난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백수해안도로와 나란히 조성된 데크 노을길
눈으로 볼 수 있는 밀물
소음소도
대신항, 영광대교가 보인다
영광대교

  4차 투어 출발 때는 부안 줄포까지 가기로 계획했으나, 길을 걸어오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내일부터 몇일 동안 꽤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힘들기도 한 참에 핑곗거리가 생겼다. 굳이 빗속을 걸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손을 들어주었다. 결론은 '법성포에서 스톱'으로 내려졌다. '설'에게 전화를 했다. 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간제 공공근로에 합격했단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함평의 차 사고처리도 잘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다행이다.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의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입구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인도의 승려로 알려진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와서 불법(佛法)과 불도(佛道)를 전래한 곳으로 알려졌으며 1998년 동국대학교 교수진들이 학술연구와 고증을 통해서 현재의 영광 법성포 지역이 백제 불교의 시작지였다는 것이 알려졌고, 영광군이 이를 기념하여 현재의 법성포 지역에 백제불교가 최초로 도래되었던 관광지를 개발하였다. 마라난타는 백제왕조 당시 지금의 영광 지역에 와서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였던 것으로 알려졌고, 법성면의 법성도 불교의 법(法)과 마라난타를 의미하는 성(聖)이 합쳐진 이름으로 알려졌다.

영광 법성진 숲쟁이

  법성진은 법성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군사시설을 말하며, 숲쟁이는 법성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 숲이다. '쟁이'는 '성'이란 뜻으로 '숲쟁이'는 곧 숲으로 된 성을 의미한다. 조선 중종 9년 진성을 축조할 때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나무들은 포구와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 역할은 함과 동시에 자연적인 아름다움도 더했다. 길이는 법성에서 흥농으로 넘어가는 약 300m에 이르며,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주로 심어져 있다. 

법성진성

  진성은 지방의 각 진여에 쌓은 방어시설이다. 영광 법성진성法聖鎭城은 전라도 일대 세곡을 모았던 법성창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 중종 9년인 1514년에 돌을 쌓아 만들었다. 문헌에는 둘레가 1688척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약 800m로 추정된다. 현재는 약 460m 정도가 남아있다.

철비

  마을 중간의 암반 위에 세워진 철비鐵碑.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물은 아니다. 돌이 아닌 철로 만든 비이다. 조선 철종 때 '홍대항'이라는 첨사를 위해 세운 철제 선정비이다. 갑오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법성 첨사로 부임하였는데 2년여 재임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다고 세운 비라고 한다. 독특하긴 하다.

법성포
법성포구 굴비거리

  법성포法聖浦는 법성면의 진내리와 법성리에 잇닿아 있는 포구다. 이곳이 지금은 말단 행정 면의 일부로 전락하여 한적한 포구로 변했지만 조선시대 법성포는 영광군을 대표하는 지명이자 영광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던 고을로 국방의 요새였으며 국가재정의 중추기관인, 우리나라 최대 조창이 자리하여 전라도 28개 군·현의 새곡을 수납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 여 척의 배들이 폭풍을 피하여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던 천혜의 항구였다.(마을 안내판에서 발췌)

서해랑길 39코스 종점, 법성버스터미널 앞

  39코스가 끝났다. 법성버스터미널이 종점이다. 집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광주행 버스 발권을 하려는 순간, 택시 기사 한 분이 자기 차를 타라고 한다. 자기도 광주에 병원 때문에 가야 하니 만원으로 태워주겠다고 한다. 광주로 바로 출발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겠단 생각으로 택시에 탔다. 나중엔 좀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 버스에서 느낄 수 있는 느긋함이 없어 아쉽다 - 광주버스터미널엔 빨리 도착했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부산행 버스표를 끊고 대합실에 앉아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남도(南道)는 전라남도의 줄임말, 약칭이다. 거의 남도의 끝까지 왔다. 다음 5차 투어는 길었던 남도 길과 이별하고, 전라북도 고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금시 올테니 쪼매만 기다리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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