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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서해랑길 38코스(T4-Day3)하사-지암, 영광읍으로

by 로드워커 2025. 3. 2.

38코스 17.6km 5시간 난이도 보통(622.2)

서해랑길 38코스도

  2025년 2월 27일(목) 오후 1시, 하사버스정류장 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배낭을 뒤졌지만 신통한 것은 없다. 과자 부스러기 등으로 점심 흉내를 내었다. 오후의 걷기는 여태까지의 일정 중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겨우 걸음을 내딛는다. 38코스 출발이다. 백수 풍력발전단지를 지나 구수산 자락에 도착해야 오늘의 걷기가 끝난다. 도착지엔 숙소가 없기 때문에 영광읍으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보낼 예정이다.

  길은 천편일률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과 그 좌우엔 넓디넓은 논이 바둑판처럼 펼쳐지고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위압적인 모습으로 하늘을 높이 솟아 있다. 풍력발전기 바로 밑을 지날 때, 뭔가를 베어버리려는 거인의 낫처럼 발전기 날개의 검은 그림자가 땅바닥을 스치며 다가와 내 몸통을 '쓱'하고 지나간다. 기괴한 느낌이 든다. 공중에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소리가 더해지면 그 느낌은 배가 된다. 어서 이 지역을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은 끝도 보이지 않는 머나먼 길이다. 걷고 걷고 또 걷고, 고난의 행군이다.

길 38, 백수 풍력발전단지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 포크 록 가수 '강산에'다. 그의 노래 중에서 특히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좋다. 문득 이 노래의 가사가 걷기여행자를 위한 격려나 찬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 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나 쉴 수 있겠지


......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가야 할 내 앞의 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 보면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하겠지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앞에 보이는 산이 구수산(339m)이다. 영광엔 '불갑산'이 유명하지만 구수산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산 좌측은 바다이고, 백수해안도로가 법성포로 연결되어 있다. 산 우측엔 영광읍이 있고, 산 너머엔 법성포가 자리 잡고 있다. 불갑산이 영광의 동남쪽 경계에 있다면 구수산은 영광의 중심을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형국이다.
 
  황량한 벌판 위로 끝없이 연결된 콘크리트 바닥 위를 걸으며 걷기에 좋은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을 생각해 본다. 
  ①낙엽이 살짝 깔린 산속의 평편한 오솔길 ②다져진 혹은 부드러운 흙 길 ③아스팔트 길 ④콘크리트(시멘트) 길
①,② 길은 당연히 걷기 여행자를 위한 길이다. 또 ③아스팔트 포장 길도 약간의 쿠션이 있어 걷기에 큰 부담이 없다. 그러나 ④콘크리트 포장길은 너무나 딱딱해서 발바닥에 가해지는 충격이 크다. 보행자에게는 최악의 길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다. 더군다나 한 없이 길어 보인다. 지도 위엔 있는 끝이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발바닥은 뜨겁고 사타구니부터 허벅지까지 통증이 베어 온다. 엉성한 발걸음은 계속된다. 

코스 우회 지점

  드디어 콘크리트 바닥 길은 끝이 났다. 포장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스팔트 오르막 길이 앞에 보인다. 저곳이 우회 지점이다. 답동으로 가는 해변길 코스가 공사 중으로 폐쇄되었다. 나는 이제 오른편으로 가 반암마을을 통과하고 군내버스가 다니는 도로와 정류장을 만나면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영광읍으로 갈 것이다. 아스팔트 길에 올라서고 끝이 보이니 다시 힘이 난다.

지암마을, 수령 450년의 보호수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다. 위용이 대단해 보인다.
지암버스정류장

  오후 3시 45분 영광읍으로 가는 버스를 간신히 탈 수 있었다. (길 옆의 떡 가게 여주인은 버스가 곧 올 것 같으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런데 길 건너 경로당에서 나를 지켜보던 한 여자분은 버스가 얼마 전에 지나갔으니 백수읍 쪽으로 가서 버스를 타야한다고... 떡집 여자는 모른다고. 그 여자분의 자신 있는 말투에 나는 백수읍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긴가민가하며 걷고 있는데, 차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버스가 오고 있다. 얼른 버스를 향해 손을 들었다. 다행히 버스는 멈춰 주었다. 앞만 보고 계속 걸었더라면 뒤에 버스가 오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고 버스는 나를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시골에서 버스타기' 여전히 숙제다.
    
  은행이 파산할 기미가 보이면 Bank Run이 발생하고, 마트에 인기상품이 입고되면 Open Run이 발생한다. 나는 해가 저물 때가 되면 Motel Run을 한다. 늙은 걷기 여행자에게 모텔은 오아시스다.

영광읍내 버스터미널 앞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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