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파랑길

자본의 침략,속초(해파랑길45코스)

by 로드워커 2022. 5. 4.

20220428(목) 해파랑길 45코스

해파랑길 45코스도

 

해파랑길 45코스는 온전히 속초 구간으로서 설악해맞이공원에서 출발해 대포항, 외옹치항과 속초해변지난다. 그리고 유명한 아바이마을의 갯배를 타고 청초호를 건넌 후 속초여객터미널과 동명항을 지나고 동해의 석호 '영랑호'를 돌아서 장사항에 이르는 17.6km의 구간이다.

 

양양과 속초를 가로지르는 쌍천을 건너자 속초의 남쪽 해안 관문인 설악해맞이공원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속초의 입구 설악해맞이 공원

 

오후 1시가 채 못되어 해맞이공원에 도착했다. 점심은 길 건너 식당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 식당을 나서 조금만 걸으면 속초의 명물거리 '대포항'이다. 대포항은 내가 예전에 정말 많이 왔던 곳이다. 여행 때문이 아니라 한 때 하던 일과 관련이 있어 자주 왔다. 그런데 오늘 본 대포항의 모습은 정말 실망스럽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때의 대포항은 비릿한 내음이 풍기는 생명력 넘치는 활기차고 서민적인 항구였다. 상인들의 활기로 가득찬 부둣가 난전 횟집들은 비록 천막을 얼기설기 두르고 고기가 담긴 물대야가 어지러이 잔뜩 놓인 허술한 모습지만 널판으로 만든 손 때 묻은 탁자에서 회 한 점, 소주 한잔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힘겹게 미시령을 넘어서면 속초가 눈 앞에 놓인다. 푸른 동해가 눈에 들어오고 대포항 난전 횟집거리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때부터는 사막서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처럼 신나는 기분으로 속초에 들어서곤 했다. 지금도 그 기분은 생생히 살아있다.

 

대포항 옛 난전 횟집 거리 풍경

 

그러나 오늘 다시 찾은 대포항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다. 내게 비친 대포항은 발전이란 명분으로 포장되어 흉하게 변해버린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변화의 과정에 여러 논의가 있었겠지만 상인들과 관광객 모두에게 바람직한 방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모습을 주민들도 그리 만족하는 듯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옛 모습을 가능한 많이 살리는 고민들이 좀 더 있었어야 할 것이다. 요즘 말로 '빈티지' 스타일의 변화는 어땠을까? 현대식 시설의 깨끗하고 획일화된 모습의 대포항만이 답일까? 이런 방식으로의 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기를 찾는 방문객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싶어할까? 이제 대포항에서는 소주 한 잔이 아니라 커피 한 잔도 마시고 싶지 않다.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다.

 

현대식 난전?

 

대포항뿐만 아니라 속초시 전체가 개발의 도가니 속에 있다. 속초는 해변가를 중심으로 천지개벽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온통 파헤쳐 지고 토목공사를 하고 고층 건물을 세우고 관광 리조트나 상업시설을 짓고 있다. 속초 시민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식의 개발은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 자치단체와 야합한 거대 자본과 토건세력만이 할 수 있다. 과연 그들이 바라는 게 속초의 발전과 속초시민의 삶의 질 향상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뿐이다. 이윤의 창출, 그 외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다른 지자체들도 이런 개발을 부러워하고 추진하려 한다는 점이다. 나라 전체가 이렇게 경제발전이라는 허무한 논리에 병들고 있다. 시멘트로 세운 거대한 건물들이 세월이 지나면 결국엔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어지럽히는 흉물에 불과하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과 토건사업들은 자본의 배만 불리는 일이다. '사람사는 세상' 만들기에 도움이 될까? 

 

살던 터전을 내어주고 그곳이 현대식 상업시설이나 관광단지로 바뀌면 그곳 주민들의 삶은 나아질까? 소수는 그 혜택을 입을지 몰라도 대다수 원주민들은 결국 생업을 잃고 불안한 고용 노동자로 바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된다. 힘들지만 보람 있고 소소한 삶의 재미를 가져다준 생업이 사라지는 이런 변화가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외옹치항과 대포항 개발 현장
속초해변
갯배 타러 아바이마을로 건너왔다

속초 시내를 통과하고 아바이마을에서 갯배를 탄다. 비가 온다. 우의를 꺼내 입고 동명항을 지나 장사항으로 길을 재촉한다. 45코스 내 영랑호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영랑호 둘레가 7km를 넘어 무리하지 않으면 오늘은 영랑호로 들어가기가 좀 애매하다. '그래 내일 돌지'하는 맘으로 45코스 종료 지점인 장사항으로 걸음을 옮긴다. 도착해보니 장사항에서 숙박을 하기가 마땅치 않다. 식당도 횟집말고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속초 시내가 멀지 않으니 오늘은 차라리 시내에서 잠자리를 찾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고속터미널로 향한다. 기사분이 내려준 여관에 투숙하여 하루를 마감한다. 마지막 해파랑길 일정의 3일 차 밤은 그렇게 지나간다. 내일은 비가 꽤 온다는 예보다.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