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목) 고흥읍내 여관에서 잠을 깬 나는 잠깐 갈등했다. 사실 어제저녁부터라고 해야겠다. 비가 상당히 많은 양으로 며칠 계속될 것이라는 예보다. 이번 여정은 여기서 후퇴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비가 온다고 집으로 돌아가버리면 일반 관광객과 무엇이 다른가? 나의 걷기 여정은 힘듦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사색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 산하 이곳저곳을 지날 때 즐거운 수고가 될 것이고, 뇌리에 깊이 새겨질 뜻깊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니 비가 와도 걸어야 한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남파랑길 71코스는 길이 21.8km로 7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쉬움'의 길이다.
두루누비에서는 「녹동항에서 고흥만방조제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길지만 평이한 코스, 유명 관광자원은 분포하고 있지 않으나 해안가의 작은 마을을 경유하며 안전하게 걷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소개하고 있다.
녹동터미널의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쵸코바 2개, 캔커피 하나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생수는 여관에서 채웠으니 이것이면 저녁에 상점과 식당이 있는 거리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를 지탱할 충분한 식량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비를 뒤집어쓴다. 출발.
녹동터미널을 출발하여 ▶녹동고등학교 ▶녹동현대병원 앞을 지나 농경지로 접어든다 ▶도덕면 소재지의 우체국과 도덕초등학교를 지나 ▶회룡제와 장동마을을 통과한다 ▶해안 쪽으로 내려가면서 수산물 공장, 양식장 등이 보인다 ▶당남해변을 지나 ▶영귀산 임도를 걷는다 ▶임도를 나오면 용동마을과 해변을 만난다 ▶해변길을 따라 걸으면 고흥만방조제공원이 나오고 그곳이 71코스 종점이다
고흥만방조제를 지난 풍류리 해안. 이미 시간이 4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72코스 종점 대전해수욕장까지 가긴 이미 틀렸다. 오늘은, 아니 이번 여정은 여기서 끝내야할 것 같다. 벌교역에 세워둔 차로 가기 위해선 우선 고흥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풍류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고흥 가는 버스는 조금 전에 떠났고 이젠 거의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택시를 부르는 수밖에 없다. 고흥서 벌교 가는 버스, 비 내리는 고흥을 무심히 쳐다본다. 며칠 뒤 내가 걸어야 할 길과 마을이 나타났다 멀어진다. 7시가 좀 못되어 벌교역에 주차해 둔 차에 올랐다.
5월 5일 비오는 어린이날이다. 고흥서 돌아온 아침, 베란다에 나와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비가 많이 오고 있다. 집 앞을 흐르는 회야강이 흙탕물이 되어 제법 사납게 흐르고 있다. 전라도 땅에서 하루 종일 빗속을 걸었던 내가 지금은 회야강변의 빗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어제부터 내린 비는 며칠 계속될 모양이다. 아침 TV 프로그램에서 중학생 역도 선수가 경기장에서 바벨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진다. 비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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