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코스 22.8km 7시간 30분 난이도 '어려움'(125.7)
진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남도의 민속, 문화, 예술의 혼이 남아있는 코스로 해송이 어우러진 바닷가에서 조개잡이, 개매기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죽림어촌체험마을’, 국악연구와 보급에 앞장서며 공연, 교육, 체험 등을 진행하는 ‘국립남도국악원’이 관광 포인트이다.
길을 갈 때 그 길의 멀고 가까움이나 주위의 풍경에 대한 느낌은 걷는 이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피곤함, 서두름, 여유로움의 정도에 따라 길은 순조로울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잘 될 거야'라는 느긋한 마음으로 길을 즐기며 걷는 것이 중요하다.
2025년 1월 2일 오전 6시 50분, 모텔에서 나와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이동. 군내버스는 7시 45분 출발이다. 한 시간씩 기다리기가 어렵다. 오늘도 갈 길은 멀다. 그래서 또 택시를 탄다. 어제 깨진 규칙이라 별 거부감도 없다. 80대의 택시 중 1대. 기사분에게 물으니 진도에 택시가 80대 있다고 한다. 약 10분 후, 8코스 출발점 운림산방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 깜깜하다.
출발, 운림예술촌과 운림공원을 지나 도로를 따라 아직 어슴푸레한 길을 걷는다. 오늘의 해도 역시 떠오른다. 서두르는 법 없이 정해진 시간에 따라 운행하는 태양. 태양의 운동에 시간을 맞추는 건 인간이다. 그 절대 원칙이 모든 존재의 시원이다.
삼별초 항쟁(三別抄抗爭, 1270년 ~ 1273년) 때 배중손이 이끄는 강화도 삼별초는 몽골제국 및 몽골에 예속된 고려 원종의 조정에 반기를 들고 봉기하였는데, 이때 왕족인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삼별초는 서해안을 공략하면서 이곳 진도 그리고 제주도에까지 진출하였으나 이후 진압군에 의하여 무너졌다. 왕온이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의 묘가 여기에 있다.
9시 35분, 의신면소재지에서 다시 8코스에 합류한다. 면소재지에 백구 기념관과 그곳에 '돌아온 백구상'이 있다. 돌아온 백구는 1988년 의신면 돈지리 박복단 할머니 집에서 태어나, 93년 대전의 애견가에게 팔려 갔다가, 원래 주인이 그리워 목줄을 끊고 약 300km나 떨어진 진도로 다시 돌아온 진돗개를 말한다. 충성심, 귀소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우리 모두에게 알려진 얘기다. 그러나 여기에는 거짓이 있다고 한다. 대전으로 팔려갔다는 것은 한 기자의 과장보도이고, 주인 할머니가 개를 보신탕업자에게 팔았고 끌려가는 중에 탈출해 돌아온 것이라 한다. 또 백구는 진돗개 순종이 아니라 잡종이라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긴 어렵지만, 집 나갔다 돌아온 백구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진돗개 홍보를 위한 '영웅 만들기'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고려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했던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 은 지금의 의신면 침계리에 있는 왕무덤재에서 붙잡혀 논수골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전투 중 피신하던 궁녀와 부하들은 붙잡혀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지금의 이 둠벙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여인네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리고, 수심이 매우 깊어 절굿대를 넣으면 금갑 앞바다로 나온다는 전설도 있다. 애달픈 사연을 담고 있는 궁녀둠벙을 보니 당시 몽고군들에게 쫓기어 절체절명의 상황에 내몰리던 그 시대 선남선녀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시골에서 마을 주변을 걸을 때, 길에서 간혹 사람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할머니다. 앞에 할머니가 보이면 인사할 태세로 접근한다. 그러나 할멍은 모른 채 지나갈 분위기다. 인사를 해도 눈길도 주지 않고 받는 둥 마는 둥이다. 그래서 한번 더 인사를 하면 계면쩍은 옅은 미소만 보이고 지나가버린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그렇다. 길을 걷는 사람은 대게 할멍이지 할아방은 잘 없다. 대게 할아버지들은 마당에 서서 길손을 노려본다. 할멍들은 외지인이 마주하기 부끄럽다 생각하고, 할아방들은 저놈이 동네에 해 끼칠 놈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죽청마을 지나 매듭재를 넘어 죽림어촌체험마을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가는 도중, 황당한 아니 위급한 상황을 만났다. 매듭재 정상을 지나 '인생은 고갯길의 연속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고갯길 아래에서 여러 마리의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려다보니 축사가 여러 동 보이고 큰 개들도 여러 마리가 보인다. 사람이 지나가면 개는 당연히 짖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개 두 마리가 길 쪽으로 뛰어 올라온다. 순식간에 맹렬하게 짖는 개 두 마리에게 포위를 당했다. 공격을 당하겠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빨을 드러내고 어르렁거리지만 다행히 달려들지는 않는다. 최대한 겸손하고 비굴한 자세로 그리고 미소 띤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개들과 멀어졌다. 개들에게서 벗어나는 십 여 미터가 몇 백 미터 정도로 느껴졌다. 축사 입구를 지나니 더 이상 그 놈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저 개들을 키우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리 큰 놈들을 묶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위협하도록 가만히 둔다 말인가? 화가 치밀지만 마땅히 항의할 방도가 보이지 않고,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휴식을 취한다. 8코스의 길이가 24km이며 아직 한참을 더 가야 종점이다. 그 다음 9코스에 진입할 텐데 아무래도 종점인 서망항까지는 무리일 듯하다. 도중에 진도읍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 교통편도 없지 않은가 - 중간에 마땅한 곳이 있으면, 거기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했다. 그래서 검색 후 선택한 곳이 남도진성 부근 '진도평화쉼터'라는 곳이다. 요금이 10만 원이다. 좀 과하다 생각되지만 달리 다른 선택을 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인터넷에 나온 사진이 꽤 그럴싸하다. 예약했다. 도착 한시간 전에 전화를 할 테니 방을 좀 덥혀달라는 부탁도 했다. 잠자리가 해결되었으니 이젠 부지런히 걸을 일만 남았다. 심기일전, 다시 출발이다.
<여귀산의 전설> 여귀산을 중심으로 죽림 쪽에 남신, 탑리 쪽에 여신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남신이 여신을 지배하고자 일 년에 한 번씩 힘과 지혜를 겨루었는데, 여신이 계속 이기자 남신은 자신의 추종자로 하여금 여신의 탑을 파괴시켜 버렸다. 그 후 힘과 지혜를 쓰지 못한 여신은 남신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 자리에 정성으로 돌을 쌓아 돌탑을 세우는 것은 전설 속의 두 신을 화해시키고 고을 사람들의 안녕과 번영을 위함이라고 한다.
'서해랑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해랑길 13코스(Tour2-Day1)해남 우수영을 출발 (0) | 2025.01.18 |
---|---|
서해랑길 9, 10코스(Tour1-Day5)팽목항에서 집으로 (0) | 2025.01.08 |
서해랑길 6, 7코스(Tour1-Day3)진도서 맞는 2025년 첫날 (2) | 2025.01.06 |
서해랑길, 그 길을 걸어야 한다. (7) | 2025.01.06 |
서해랑길 5코스(T1-Day2)진도대교를 건너다 (2) | 2025.01.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