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코스 11.1km 3시간 30분 '쉬움' (797.7)
동진강을 건너 부안에서 김제로 향하는 길로 항일 시인의 문학과 내륙마을의 풍경을 만나는 코스이다. 항일 시인 신석정 선생의 문학작품과 일대기를 전시한 '석정문학관'과 저수지를 중심으로 테마가 있는 다리, 걷기 좋은 길 풍경을 선사하는 '고마저수지'가 있다.
2025년 3월 17일(월) 버스는 전주를 향해 달리고 있다. 6차 투어다. 아마도 4박 5일의 일정이 될 것이다. 이번 투어에선 전라도를 벗어나 충청도로 입성하게 된다. 서해랑길 걷기는 이제 남한으로 치면 그 허리께까지 온 것이다. 중간 정차역이 없는 열차를 타고 종착역을 향해가는 기분이다. 11시 30분쯤 부안터미널에 도착했다.
50코스로 출발하기 전 서둘러 서문안 당산을 찾았다. 지난번 49코스 종료 때 살펴보지 못한 장소이다. 6차 투어를 시작하면서 꼭 둘러보고 싶었기에 부안읍성을 지키는 할매 할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각 두 쌍의 솟대당산과 돌장승은 부안읍성의 서문안을 수호하던 것으로 조선 숙종 15년(1689년)에 세웠다. 사진엔 할매당산, 할배당산, 할배장승(상원주장군), 할매장승(하원당장군) 순으로 서 있다. 다른 곳의 장승들과는 달리 부안의 할미 할배 돌장승은 무섭고 위압적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인자하지만 어리숙하고 삐친 듯 한 표정으로 금시라도 콧물이 주르륵 흐를 듯 해학적이다. 마을 지키는 것은 무서운 외양이 아니라 온화한 마음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부안의 동문안 당산과 서문안 당산은 모두 한쌍의 돌솟대와 돌장승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향촌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오는 마을축제와 민간 신앙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른바 동제복합문화洞祭複合文化의 한 이정표가 되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그것은 땅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적 징표이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에서)
조선시대 공개 처형은 사람의 왕래가 반번한 곳에서 집행하였다. 이는 중한 죄를 지으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목적이었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처형하는 것'과 '먼저 처형한 뒤 보고한다'는 선참후계先斬後啓를 적용하였다. 따라서 부안에서의 공개처형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장소, 즉 부안읍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남문' 밖에서 이루어졌다.(동학혁명 유적지 안내문에서 요약 발췌)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은 부안읍성 남문 부근일 것이다. 당시의 피비린대 나는 처형장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섬뜩하기도 하다.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뒤 처형된 사람은 확인된 숫자만 22명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부안읍성과 당산을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했다. 중국집에서... 이제 50코스로, 동진강을 넘어 김제로 들어가기 위해 출발이다.
우리나라 현대시의 큰 맥을 이은 신석정이 살던 집과 그를 기리는 문학관. 신석정은 1907년 부안군 부안읍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석정錫正이며, 아호는 석정夕汀이다. 전형적인 자연 시인이라 불리는 그는 심화된 자연숭배 사상이 짙은 소박하고 간결한 형식의 시를 많이 남겼다. 주요 작품으론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꽃덤불≫, ≪들길에 서서≫, ≪그 먼 나라를 아르십니까≫ 등이 있다.
'수백억을 쏟아부은 부안 고마제테마공원 잡초만 무성'이란 신문 기사(전북중앙 24년 8월)가 검색되었다. 그런 지적 때문이었을까, 내가 본 현재의 고마제 주변은 대부분 관리가 잘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역신문의 기사가 개선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불량한 의도로 트집을 잡기 위한 경우도 많은 게 현실이다. 지역신문, 인터넷신문의 폐해는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아무튼 거대한 농업용 저수지인 고마제가 지자체와 주민의 노력으로 상당히 훌륭한 휴식처이자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관광지로 바뀐 것은 평가할만한 일이다.
사진의 조형물을 보고 언뜻 '누에고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안스럽네. 부안은 뽕과 누에의 고장이 아닌가? 하나 다리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 그게 아닌 란 걸 알았다. 못줄다리다. 조형물을 자세히 보니 정말 그렇다. 요즘이야 농기계(이양기)가 모를 심지만 예전엔 논에 못줄을 놓아 온 마을 사람들이 두레로 모를 심었다. 한 해 농사의 가장 큰일이 모내기였다.
약 5km가 넘는 고마제 수변 산책로 끝에 꽤 큰 카페(알땅카페)가 있다. 카페는 아직 영업을 하고 있지만 인접한 '찜질방'은 폐허가 되어있다. 고마제를 찾는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영업을 포기하고 버려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장사를 하려고 건물을 지을 땐 온갖 노력을 들이지만, 장사를 포기하고 철수하는 순간 건물은 흉물이 되어 버린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건물주가 그곳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렇게 쇠덩이와 시멘트와 쓰레기로 범벅이 된 문명의 잔해들은 곳곳에 쌓여만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방방곡곡 구석구석, 새로운 건물들은 또 지어지고 있다. 여전히, 앞으로도 쭉... 이젠 그만할 때도 됐는데.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장등마을은 조선시대 부안민란이 일어났던 곳으로 김제, 전주, 서울 등지에서 부안으로 들어오는 동진나루가 있고, 동쪽으로 고부천이 흐르고, 남서쪽으로 고마저수지의 일부가 걸쳐있고 중앙에 내기평야가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를 이루는 마을이다.(마을 안내판)
동진강(東進江)은 전북 정읍 상두산(象頭山)에서 발원하여 호남평야 남부를 서북 방향으로 흐르며 황해로 유입되는 전북의 강이다. 길이는 44.7km이고 하류에 이르러 만경강 수계와 겹친다.
부안군은 전북 남서쪽 변산반도에 위치하여 서쪽이 황해에 면해 있는 군이다. 부안군의 행정구역은 1읍 12면이며, 면적은 493㎢이다. 인구는 4만 7천 여 명이다. 잘 있으라 부안이여!
김제시는 1읍 14면의 행정구역으로 나뉘며 면적이 545㎢이고 인구는 8만1천여 명이다. 남북으로 큰 강(동진강, 만경강)이 두 개나 흘러들며 토사물을 운반해 쌓은 덕에 지금의 김제평야가 만들어졌다. 한반도 최대의 곡창지대이다. 김제, 정읍, 부안이 맞닿은 동진강 하류 지역은 한국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를 테마로 '김제지평선축제'가 벽골제 일원에서 열린다.
51코스 23.4km 보통(821.1) 52코스 18.4km 보통(839.5)
김제에 대하여 이렇게라도 적어 놓는 것은 일방적 통과(생략?)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서해랑길 51, 52코스는 순전히 김제평야와 동진강변만을 걷는 길이다. 심지어 면 이름이 광활면이다. 하루 종일 똑같은 경치를 보며 농로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6차 투어에서 51, 52코스는 생략하기로 했다. 일종의 핑계이다. 북진을 서두르고 싶은 마음에...... 대신 김제시로 들어가 시내의 분위기를 느끼고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다. 50코스 종점에서 농어촌버스 막차가 5시 17분에 출발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한참의 시간을 김제지평선 휴게소에서 보냈다.
이곳 휴게소에 이렇듯 훌륭한 쉼터가 있다. 누구나에게 개방된 공간이다. 편의점 커피를 한 잔 뽑아들고 이곳에 들어와 쉬면서 김제시로 들어가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린다. 같은 공간에 있는 김제 특산물 판매장을 구경하다 눈에 띄는 놈이 있어 집어 들었다. 길을 걷다 간식으로 먹을만하지 않을까?
휴게소서 근무하는 여성 한 분과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기다리던 중 저 멀리 들판에 버스의 형체가 보인다. 역시 지평선의 고장이다. 나는 하차 지점을 김제버스터미널로 정했다. 지도상엔 모텔이 하나 검색된다. 버스에서 내려 가 본 모텔은 영업을 하지 않는 폐모텔이다. 검색을 해도 주변엔 더 이상 모텔이 없다. 역전에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인구 감소와 자가용을 이용하는 생활패턴으로 대중교통 중심지 주변에 숙박업소가 거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김제는 다른 지방도시와는 좀 다르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터미널과 역 주변은 숙박업소가 있기 마련인데... 김제는 있던 업소도 한둘씩 사라져 지금은 동공화 되어버렸다.
터미널에서 꽤 떨어진 곳에 모텔이 두세개 있다. 주변에 인력사무소가 두어 군데 있고 현장 노동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모텔을 먹여 살리는 게 이들 노동자들이다. 나도 방을 하나 얻었다. 내일은 일찍 기상하여 다시 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6시 50분경 청하면으로 가는 첫 차를 타야 한다. 김제에서의 첫 날이자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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