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무안공항서 서해랑길 2차 투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설날 연휴를 보내고 곧바로 3차 투어를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혹한과 폭설이 전국을 뒤덮어 꼼짝없이 집에 갇혔다. 기상 예보는 쓸데없는 생각 말고 가만히 집에 있어라는 경고를 계속 보냈다. 어디 한번 나서봐 개고생 할 테니... 멈칫할 수밖에 없다. 북극의 찬 공기가 한반도에 선사한 이번 겨울의 마지막 강추위는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몸은 집 안에 있지만, 머리엔 남도 무안의 길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렇게 3주가 흘러버렸다.
2025년 2월 12일(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4시 50분이다. 커피를 마시고 미리 챙겨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서해랑길 3차 투어가 시작됐다.
노포동 고속터미널에서 6시 20분 출발 광주행 고속버스에 탑승했다. 김해를 지나자 비는 눈으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했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대설경보가 발령 중이다. 버스는 폭설 속을 통과한다. 함안을 지나자 이젠 눈이 비로 바뀌었다. 빗속의 섬진강은 해무 속을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언제 보아도 좋지만 빗속의 섬진강은 더 멋져 보인다. 9시 45분 광주에 도착했고, 10시에 무안행 시외버스로 갈아탔다. 이제야 전라도의 냄새가 난다.
21코스 11.9km 4시간 난이도 '쉬움'(338.7)
마을길과 들길을 지나 연꽃이 피는 신기저수지를 지나는 길이며, 무안의 특산물인 백련을 만나볼 수 있으며 연꽃이 피는 6~7월에 특히 아름다운 '신기저수지'가 있다.
2025년 2월 12일(수), 전라남도 무안군 운남면 영해마을에서 서해랑길 3차 투어를 시작한다. 서해랑길 걷기는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다. 해남에서 강화 방향으로 걷는 것을 순방향이라 한다. 나는 항상 순방향으로 걸어왔다. 다만 오늘은 역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21코스 종료 후 무안읍으로 가서 숙박을 해야 하기에 읍에 더 가까운 용동마을을 종착지로 정했다.(이 방법은 결론적으로 유효했다. 그것은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군내버스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영해마을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7시간 30분이 걸렸다. 눈은 녹았지만 길은 질척하다.
무안터미널에 도착하여 들른 편의점에서 산 김밥이 점심이다. 버스정류장 안에서 먹었는데 꽤 맛있다. 이제 출발해야 한다. 이곳 영해마을에서 용동마을로... 그리고 용동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무안읍으로 가 첫날을 보내야 한다. 여기 영해마을은 22코스 출발지임으로 내일 아침 다시 와야 한다. 12시 45분 3차 투어 첫발을 뗀다.
코스로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길 옆에 버려진 듯한 배추밭이 보인다. 밭주인은 지난 한 해 내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을 여기에 쏟아 부었겠는가? 헛수고가 되고 만다면 망연자실할 수밖에. 더 이상 농사는 짓지 않겠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는가? 망가진 게 아니라 곧 출하할 수 있는 배추밭이기를 바라며 걸음을 옮기지만 마음은 많이 불편하다. 우리 모두는, 아니 대다수는 사는 게 참 힘들다.
이건 대추나무다. 홍천에 있을 때 집 뒤에 대추나무를 여러 그루 심었다. 그래서 알아볼 수 있다. 집 뒷 편의 텃밭 주위로 심어논 나무들이 잘 자랐다면 지금 이 밭의 나무들 정도일 것이다. 홍천의 대추나무들이 잘 컸는지 정말 궁금하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봄의 새순이 늦게 나온다. 하지만 새 순이 터져 나오면 그 빤짝거리는 연둣빛은 정말 아름답다. 여느 보석에 비할 바 아니다. 여름이 무르익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면, 반쯤 익은 대추를 따서 그 자리서 맛을 보는데, 그 달고 아삭한 맛이 대추나무 밑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그동안 여기 무안도 눈이 많이 내렸다. 이제는 응달을 제외하곤 모두 녹았다. 그래서 포장한 길이 아니면 모두 이런 진창이다. 조심스레 발 디딜 곳을 찾아 걸어야 한다. 걷기 여행자에게는 힘든 길이다. 무심코 진창에 발을 디뎠다간 낭패를 보고 만다. 그래서 속도가 나질 않는다. 땅이 빨리 마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마른땅을 쑥쑥 걸어가는 당연한 걸음걸이도 작은 축복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안 하묘리 두곡 고인돌군은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운남-망운간 도로건설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있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후 이곳에 이전 복원되었다고 한다. 무안 운남면 일대에는 많은 고인돌군이 낮은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고, 거주했던 집자리 등도 함께 확인되고 있어 여러 집단이 넓은 지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 유적지에서 청동기 시대의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청동기시대, 먼 시간 같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일 수 있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와 같지 않다. 인간 종족이 어떻게, 왜 이렇게 망가져 가고 있는가는 살피는 것은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파멸로 이끄는 잘못들을 고쳐 나갈 것 같진 않다. 역사 속 현인들의 무수한 가르침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4시 10분, 21코스 종점 용동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시간표을 확인하니 무안읍 가는 버스는 운남면에서 5시 10분 출발이다. 운남에서 여기까지 약 10분 걸린다고 보면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상치 않았는데, 송현 방면에서 군내 버스가 한 대가 들어온다. 손을 들어 버스에 탔다. 운전석 뒷자리엔 버스회사 관계자인 듯한 사람이 앉아 있다. 정시 운행하는 버스인지 기사 연수를 위해 노선을 답사하는 버스인지 애매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나는 무안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거의 한 시간을 절약했다.
무안에 도착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낙점한 모텔로 갔다. 일반실은 만실이고 디럭스형 객실만 남았다. 숙박비가 예상을 뛰어넘는다. 무안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안인데 너무 비싸다.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 다른 모텔을 찾는다. 터미널 뒤편에 모텔이 보인다. 그런데 여긴 또 너무 싸다. 외관은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는다. 잠만 자고 일찍 나올 텐데 뭐 하는 생각으로 방을 잡았다. 그러나 싼 게 비지떡이라 했다. 꾀죄죄한 벽지와 요즘 보기 드문 구형 TV가 조화롭다. 결정적으로 물 한 방울 쓰지 못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여주인은 샤워기와 세면대 물을 동시에 틀고... 수압이... 어쩌고 저쩌고 했지만 되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잤다. 씻지 않는 것은 혼자 길 걸어 다니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서해랑길 3차 투어 1일 차는 '그냥 잤다'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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