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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서해랑길 24, 25코스(T3-Day3)물암에서 송도항까지

by 로드워커 2025. 2. 19.

24코스 20.8km 7시간 난이도 '쉬움'(390.6)

울창한 해송과 긴 백사장을 걷는 해변길과 마을길, 들길을 걷는 코스, 코스 대부분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으며 갯벌체험을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해송 숲이 우거진 3km 길이의 해변 '홀통해변' 함해만의 아름다운 경치와 게르마늄이 풍부한 황토갯벌이 어우러진 '팔방미인마을'이 있다.

  지난 밤에 다행히(?) 온수가 펑펑 나오는 모텔에서 샤워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어제 약 32km를 걸었는데 그 정도가 한계치인 것 같다. 예전, 하루 40km 넘게 걸은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리다. 서해랑길 맵을 보고 다시 살폈다. 내일은 숙소가 있는 송도항까지 가야 한다. 24코스(20.8k), 25코스(16.7k) 그리고 젓갈타운에서 송도항까지 3k를 합해  40km를 걸어야 한다. 무리다. 그랬다간 어둠 속에 부상병 신세로 숙소에 도착할 것이다. 그래서 버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어차피 24코스 출발점 '봉오제'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데 조금만 더 가자. 그러면 만사 오케이다. 좀 간지럽지만 물암마을에서 하차하여 거기서 시작하자. 완벽을 추구하다간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어설픈 핑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는 실행을 했다.   

6시 20분 출발 군내버스는 나를 물암까지 실어다 주었다
물암마을 버스정류장

  2025년 2월 14일(금), 치사함인지 임기응변인지 애매하지만 오전 7시 물암마을에 하차했다. 여기서부터 오늘의 걷기를 시작한다. 24코스를 무려 11.5km나 잘라 먹었다. '홀통해변'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다. 길은 아직 어슴푸레하고 하늘은 달이 지배하고 있다. 엊그제가 보름이라 아직 둥글고 밝은 달이다. 쌀쌀하고 어둑하다. 새벽달을 친구 삼아 걷는 것도 운치가 있다. 

달과 함께 걷기
물암마을 앞 해안 갯벌
길24, 해제면 물암마을
무화과 나무
무화과 맨

  물암 출발 후 1km 조금 지나 해제지도로를 걷던 중 도롯가에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인가? 생각했으나 그가 있는 지점에 접근하여 보니 그곳은 버스정류장이 아니다. 무화과를 파는 천막 앞, 이 사람은 무화과 판매장 주인이다. 나는 인사를 하고 길 옆에 전지해 놓은 나무들이 무화과인지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그냥 지나가려는데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나를 불러 세운다. 사양했으나 재차 들어오라고 하여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은 두 동인데 한 동은 판매 시설이 어지럽게 널여있고, 한 동은 생활공간으로 쓰고 있다.
 
  커피를 한 잔 타 주고는 생전 처음보는 나에게 자기 얘기를 한다. 좀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얘기를 들어주었다. 이 친구, 정상적이지 않은 스토리가 있다. 요약하면, 여기 천막은 그의 집이자 사업장이며 70년생인 그는 이 동네가 고향이다. 그리고 몇 년 전 음주운전으로 큰 사고를 냈다고 한다. 가해자인 그는 형사적 처벌을 받았고, 사고로 자신의 몸도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의 몸 상태는 심각했고 지금은 겨우 회복 중인 상태라고 한다. 주절주절 얘기를 한다. 일생 일대의 사건에 대해 반성이나 죄의식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에 실망감이 컸다. 자신의 잘못이 불러온 피해들에 대해선 너무 무감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커피 잘 마셨단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길에서 주운 씁쓸한 사연이다. 

일출

  이 곳 제방길 입구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났다. 집 앞에서 아침 흡연 중인 중년 남자다. 녹색으로 뒤 덮인 갯벌을 보고 '감태'냐고 물었다. 감태는 맞는데 모래가 많이 섞여 서금서금해서 채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어서 "낙지는 많아요?" 하고 물으니, 얼마 전까진 갯벌에 들어가면 자기 먹을 것은 잡았는데 작년엔 여러 번 해봤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한다. 아직 갯벌이 오염되진 않은 것 같은데 낙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낙지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넓은 갯벌 위에 아침 햇살이 가득하다. 아름답지 않은가.
창산마을 앞
양배추 출하, 이 지역엔 양배추 밭이 많다.
양배추 밭
24코스 종점 매당노인회관 앞

  24코스가 끝났다. 매당마을 보호수인 수령 300년의 팽나무 아래 정자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걷기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가끔 자주하는 식사 방법이 있다. 저녁에 숙소를 정하면 치킨집에서 후라이드 치킨 1마리와  맥주 한 캔을 사서 방으로 들어간다. 치킨이 저녁 식사다. 3~4 조각이면 충분하다. 맥주 한 잔과 오랜만에 먹는 치킨은 별미다. 평소엔 치킨을 거의 먹지 않지만 여행길에서는 괜찮은 한 끼 식사가 된다. 식당을 찾을 필요 없이 걷다가 어디든 걸터 앉아 먹을 수 있고, 영양학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것 같고, 게다가 가성비도 좋다. 가성비가 뛰어난 것은 그날 저녁, 다음날 아침과 점심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팽나무 아래서 마지막 남은 치킨 세 조각으로 배를 채웠다. 치킨에 딸려 온 콜라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25코스 16.7km 5시간 30분 난이도 '보통'(407.3)

해안선을 따라 갯벌과 붉은 황토밭으로 이뤄진 마을길을 걷는 코스. 습지 보전이 잘 되어있는 삼천년의 역사를 가진 서해안의 갯벌, 갯가 옆 넓게 펼쳐진 '태천염전' 김유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연계사'가 있다.
 

  저렇게 전망이 좋은 자리에 다 지어가던 펜션이 중간에 멈춰버렸다. 안타까운 광경이다. 이걸로 얼마나 많은 관련자들이 고통을 받을까? 땅이 있고 전망이 괜찮으면 무조건 짓는다. 건설업자는 대출받아 지으면 된다고 부추기고, 땅 주인은 욕심이 난다. 펜션이나 리조트나 방갈로나 캠핑촌이나 돈이 될 것 같으면 무조건 짓는다. 선조들과 부모의 피와 땀으로 일군 땅에...그렇게 욕심만을 펼칠 땅이 아닌데... 

신안-무안 경계

   12시다. 이제 신안군으로 들어간다. 뒤 돌아보니 무안이 넓기는 하다. 지금부터는 신안의 섬들 천사섬, 솔섬, 사옥도, 증도를 빙 둘러 걸어야 한다. 그리고 이틀 뒤 여기서 5km 가량 떨어진 반대편 지점에서 다시 무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신안은 섬으로 이루어진 자치단체이다. 1004섬의 나라.

  신안군은  2읍 12면의 행정구역으로 나뉜다. 인구는 3만8천 여 명이고 면적은 655㎢이다. 신안군은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1,025개의 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진 섬들의 천국이며 국내 최대 규모의 광활한 갯벌과 전국 천일염의 70%를 생산하는 넓은 염전이 있다. 가거도는 중국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국토의 최서남단 끝섬이다. 

지도로 건너가는 걷기여행자

  제방을 건너와 잠시 쉬는데, 텅 빈 상가 건물이 하나 보인다. 무안 해제와 신안 지도가 만나는 지점, 버스정류장 앞 삼거리이다. 이렇게 목이 좋아 보이는 곳인데 건물은 텅 비어있다. 예전엔 사람과 물자가 분주히 오갔을 노른자 자리다. 그러니 마을들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시골의 마을은 집들의 절반 이상이 빈집이다.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집들도 노인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인데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결국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나중엔 외국인 근로자들이 농토와 마을을 점유하고 단순 일꾼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농업을 경영하는 농사업자로 바뀔지도 모른다. 외국인이 주인이 되고 원주민은 손님이 되는 그런 때가 올지 모른다. 해남의 어느 면소재지에서는 '아시아마트' 밖에 없어 황당했던 일도 있었다.  

봉황산(165m) 임도
길 25

  사실 서해랑길은 갯가나 농경지 사이로 난 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산길은 드물다. 산이라 해도 야트막한 동산이 대부분이어서 걷기에 부담스럽진 않다. 이 길도 지도읍의 봉황산(165m)이란 작은 산의 임도이다. 그래도 산은 산이다. 오랫만에 산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다. 

아직 철이 아니어서 썰렁한 젖갈타운
서해랑길 25코스 종점, 신안젖갈타운 앞
지도읍 풍경
방에서의 전망

  오후 3시 40분, 꽤 이른 시간에 송도항 일번지 모텔에 도착했다. 방도 깨끗하고 하룻밤을 쉬기에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더운 물도 잘 나오고 난방도 잘 되어있다. 게다가 가격도 적당하다. 그리고 여느 모텔과는 사뭇 다르다. 조경도 나름 좋고, 주변 공간도 시원시원하다. 가장 멋진 것은 창 밖의 전망이다. 어지간한 5성급 호텔도 이만한 전망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좀 쉬었다 주변 산책을 해야겠다. 일찍 숙소에 도착하니 모든 게 여유롭다. 

가까이 가도 꿈쩍않는 갈매기
송도항 일몰

  일몰 시간이 다가와 산책을 겸해 모텔 밖으로 나왔다. 송도항 바닷가에 서서 지는 해를 보고 싶다. 항구, 선착장, 선창 이런 단어가 나는 유달리 좋다. 항구, 사람이 떠나고 또 사람이 오는 곳 아닌가. 선창, 비릿한 냄새와 통통배 그리고 갈매기들이 생각난다. 내가 이런 단어에 애착을 갖는 건, 아마 어린 시절 외할머니댁(가덕도)에서의 추억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부실한 기억력이지만, 소 달구지를 끌고 선창에서 물건을 실어오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해 질 무렵 집집마다 굴뚝에서 희고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은근히 퍼지는 밥 짖는 냄새는 잊히지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나무 때는 냄새가 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투어 4일 차를 위해 방으로 돌아가 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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