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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서해랑길 60, 61코스(MRT7-D1) 대천역에서 오천항까지

by 로드워커 2025. 4. 5.

회야강은 꽃 잔치 중이다

  집 떠날 때,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나무는 태안에서 돌아온 나에게 활짝 핀 꽃을 보여준다. 꽃은 망설이지 않고 며칠 만에 만개해버리고 말았다. 자연은 이것저것 살피며 미적거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사정없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무도하고 파렴치하고 사악한 한 인간은 자리에서 쫓겨났다. '파면'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망가져 가는 나라 뉴스에 눈을 메어 놓지 않아도 된다. 식당 사장은 어떻게 판촉을 할지, 농부는 밭에 거름을 더 넣을지, 어부는 새 그물을 사야 할지 고민하면  된다.
 
  나는 작년 12월 9일 서해랑길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서해랑길 걷기를 결심한 이유 중엔 12월 3일의 계엄 발동과 혼돈의 나라 꼴도 분명 한몫을 했다. 아무튼 연극의 1막은 끝났다. 배우들은 분장을 다시 하고 무대는 다른 장면으로 바뀐다. 


60코스 17.2km  5시간 30분 난이도 보통(972.7)

  60코스는 서해안 해산물의 집산지이자 인근 섬을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대천항' 일대를 지나는 코스이다.
보령머드축제의 주무대, 백사장 길이만 3.5km에 달하는 '대천해수욕장' 52m 타워에서 바다를 가로지르는 '짚트랙코리아' 갯벌생태와 머드전시물이 있는 '보령머드박물관' 토정비결 이지함의 '토정이지함묘'


  2025년 3월 31일(월), 알람이 미안해할 정도로 먼저 눈을 떠 한참을 방에서 미적거렸다. 6시 50분 현관문을 나섰다. 아파트 벚나무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나무들도 광합성을 할 여린 녹색 병사들을 일제히 세상에 내어 놓고 있다. 집 앞 회야강은 한 장의 기다란 판유리 마냥 흐르지도 않고 동네 모습을 담고 있다. 영하 2˚의 쌀쌀하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가 이제 곧 더운 날씨에 밀려날 것을 생각하니 아쉽기만 하다. 충청도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도보여행자에게 천성산은 잘 다녀오라 한다. 넵, 다녀오겠습니다. 천성산 신령님이여...

울산역 ktx, 아산역 새마을호(익산-용산) 내부

  이 글은 서해랑길 기행문이다. 한 번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의 걷기 여행을 'Tour'라 했다. 좀 밋밋하다. 그래서 앞에다 'My Road'를 갖다 붙였다. 7차 My Road Tour의 첫날은 여태와는 달리 기차여행으로 시작했다. 울산역에서 보령 대천역까지다. 천안아산역까진 ktx, 아산역에서 새마을호로 환승하여 대천역에 내렸다. 생전 처음 발을 딛는 대천역에서 도보여행자는 길로 나왔다. 아직 12시 전이다.

대천역

  대천역에서 몇 킬로를 걸어와 60코스에 합류하는 지점이 여기 대천 2교 옆 잠수교이다. 차 한 대만 겨우 지날 수 있는 이 다리는 우기엔 물에 잠긴다. 다리가 거대하지 않아 약간의 정감 같은 것을 느낀다. 나는 잠수교를 건너 코스 속으로 들어갔다.(건너편 내항동과 이쪽 대천동을 연결하는 보령대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리 건너 대천방조제 길로

  약 5km에 달하는 길고 변화 없는 대천방조제 길을 걸어가다 재밌어 보이는 물체를 만났다. 엄청나게 많은 대형 물탱크 같은 것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다. 약간 쿰쿰한 냄새가 나 짐작은 했지만 마침 탱크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보여 뭐가 들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액젓이다. 멸치, 까나리 같은 액젓이 들었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액젓을 대형탱크에 담아 허허벌판에서 발효를 시킨다는 것이 놀랍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길 60, 대천방조제 길

  송학 3리 황금 바지락마을, 소나무가 울창하고 학이 서식하여 송학리라 불렸다고 한다. 마을 앞엔 선창이 있는데 내가 지날 때도 주민 한 분이 갯벌에서 캐 온 바지락을 차에다 싣고 있었다. 얼핏 본 바지락이 실해 보인다.

산고내길 버스정류장
고정리 국수봉 여우고개

  주포면 고정리에서 서해랑길 안내 이정표를 따라갔으나 뭔가 안내가 틀렸다. 토정 이지함의 묘를 기대하고 표식을 따라 걸었으나 길은 계속 산속으로 이어진다. 산을 오르며 이상하다 했지만 토정의 묘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나는 산을 빠져나왔다.  60코스를 살펴보면서 꼭 가보려 했던 곳이 토정의 유적지인데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산을 돌아 후진하여 그곳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토정과 연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포기하고 전진했다.  

60코스 종점, 깊은골 버스정류장. 보령화력발전소 앞

  지금 경상도는 산불로 난리가 아니다. 지나왔거나 지나야 할 산하가 불에 타버리는 것은 도보여행자에겐 큰 아픔이다. 몇 해 전 동해 해파랑길을 걸었을 때의 울진 산불 현장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광경이었다. 이번 경상도 지역의 동시 다발적 산불은 어제로 주불이 잡혔다고 하나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총력을 동원하여 잔불까지 잡아야 한다. 75명 이상의 인명과  48,000㏊ 이상의 면적이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 48,000 ㏊는 480㎢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보령시 면적이 560㎢이니 보령시의 85%가 이번 불에 타버린 것이다. 안타깝지만 빨리 진화를 완료하고 피해 복구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간이다. 


61코스 8.7km 3시간 난이도 쉬움(981.4)

 61코스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농촌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이다.
천주교 박해사건 때 처형장이었던 천주교 순례지 '갈매못순교성지' 전국 제1의 키조개 생산지 '오천항'


  60코스 종점 깊은골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바로 61코스를 출발했다. 여기는 보령화력발전단지의 입구에 해당하는 오포마을이다. 언덕 위에 서있는 흰색의 작고 소박한 교회가 눈길을 끈다. 평온해 보인다.

오포리 들판의 범상치 않은 모습의 소나무 한 그루
영보마을
갈매못 순교성지 정원
다섯 성인 첫 매장터

  '갈매못'은 예로부터 이곳의 산세가 '목이 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도 같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이라 생긴 이름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프랑스 선교사인 다블뤼 주교와 오메르 신부, 위앵 신부 그리고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이 한양에서 이곳 충청 수영으로 끌려와 갈매못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래서 이곳이 순교성지가 되었고 당시 이들 다섯 성인 이외에도 약 500여 명의 무영의 순교자들이 이곳과 앞바다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예인선

  하루의 마감을 위해 오천항을 향해 걷던 해변길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모양의 배들을 만났다. 분명 고기잡이 배는 아닌 십여 척의 똑같이 생긴 배들이 바다 위에 떠있다. 나는 아는 게 너무 적다. 무슨 배인지 궁금해하며 지났는데, 잠시 후 숙소 사장님께 물어 알았다. 그 배는 예인선이다. 인근에 있는 보령화력단지에 연료(석탄, LNG 등)를 싣고 들어오는 대형선의 안내와 부두 접안을 돕는 배다. 이 예인선은 3척이 한 조로 움직여 임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걷기는 공부工夫다.

오천항 초입
새로운 모양의 코스 입간판
충청수영성 서문
충청수영성 영보정

  보령保寧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사령부 역할을 하였으며, 조운선의 보호와 안내 그리고 외적 방어 역할을 하다가 1896년 폐영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다른 수영성 유적은 훼손되어 원래의 경관을 잃어버렸지만, 이곳 충청수영성은 지형과 함께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진의 '영보정'은 천하명승으로 알려져 조선시대 유명 시인 묵객들이 방문하여 많은 시문을 남기기도 한 곳이다.(안내문에서 발췌)

오천항, 전국 키조개 생산 1위 어항

  오천항은 광천천이 서해 천수만으로 유입되는 곳에 있는 항구이다. 오천은 예로부터 보령 충청수영성이 있었을 만큼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시대가 바뀌면서 예전의 영화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오천항은 여전히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천항은 천수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까닭에 방파제 등 별도의 피항 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다. 따라서 방파제 없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선착장에는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인터넷)
 
  오천항에 들어오니 항구 분위기가 제법 활기가 있다. 숙소 사장님의 말로는 그건 인근 발전소의 공사 현장 때문에 인부들의 숙소로 이용되는 곳이라 그렇다고 한다. 예전엔 활기찬 항구들이 지금은 모두 그 영화를 내려놓고 있다. 이렇게 인근에 대형 공사 현장이라도 없으면 쓸쓸함 속에 지는 해를 바라보는 항구가 될 수 밖에 없을거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오천항 일몰

  집에서 출발한 서해랑길 일곱 번째 '마이로드투어' 첫날이 보령시 오천항에서 끝났다. 배낭을 멘 여행객은 모텔로 들어간다. 내일은 4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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