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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평화의 길

DMZ 평화의 길 16-2, 17, 18코스(고석정에서 철원 서면까지)

by 로드워커 2025. 11. 14.

평화의 길 16-2코스는 우회로로 고석정에서 남대천교까지 이어진다. 길이가 12.8km이고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난이도 '보통'의 길이다. 시즌별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고석정꽃밭이 있고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승일교, 두루웰숲숙문화촌 등이 있다.

10월 30일, 고석정 한 모텔에서 새벽 거리로 나왔다. 아직 어둡다. 오늘은 제대로 가을이다. 새벽안개는 한탄강변을 가득 채웠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오늘 갈 길은 한 때 청춘이 살았던 백골부대 주둔지를 지난다. 40년도 더 지난 청년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국가등록유산 승일교
다리 위엔 남한공법 구간, 북한공법 구간의 표시가 있다

철원 승일교는 1948년 8월 북한이 착공하여 1958년 12월 3일에 남한이 완공한 다리이다. 북한이 점거할 때 지역주민을 '노력공작대'라는 이름으로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했다가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다. 수복 후 남한에서 다른 공법으로 나머지 구간을 공사 완공하면서 '승일교'라고 명명했다. 이 이름엔 두 가지 유래가 전한다. 남북한 통치자의 이름(이승만의 '승', 김일성의 '일')을 따서 지었다는 설과 전사한 박승일 장군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문혜리

며칠 동안 이어진 힘든 훈련의 끝은 항상 행군이었다. 100km 행군의 말미는 언제나 문혜리 초소를 통과했다. 지칠대로 지쳐 비몽사몽간에 행군을 하던 백골부대 소총수들이 문혜리 초소를 지날 때, 누군가 어둠 속에서 외쳤다. "문혜리다! 다 왔다. 힘내자." 녹초가 된 병사들은 따뜻한 식사를 하고 막사에 누워 쉬는 달콤한 휴식을 떠올리고 힘을 얻는다. 이제 그 옛날의 길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여기 문혜리가 바로 그곳이다. 40년이 더 지난 시간, 늙어버린 청춘이 보병이 아닌 걷기여행자로 이 길을 지나간다.

현재를 보는 것은 과거를 소환한다. 길가의 현대식 군 막사를 보니 옛 병영의 모습이 흐릿하게 흑백사진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위병소가 있고 연병장이 있고 탄약고가 있고 막사들이 있었다. 취사장이 있고 연병장 한편엔 60트럭이 줄 지어 서  있다. 병사들로 우글거리는 막사 안에는 베치카가 있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베치카는 항상 고참들 차지였다. 짬밥 순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배식되는 불어 터진 찐라면은 내 생애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아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취침 시간 직전 막사 뒤에 집합을 당해 소위 '빧다'를 치고 맞는 일은 하루의 통과의례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맞는 놈이 때리는 놈으로 변한다. 그게 시시해지면 제대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흐릿한 영상들이러시아 소설 속 병영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때의 병사들. 서울 출신 김 멀때, 끌려온 순종, 목수아들 병기, 한 칸 아래 경태, 당진 면서기, 보길도 촌놈, 꼴통 춘식, 판덕이, 진하... 이들이 백골부대 22 연대의 1소대 소총부대의 전우이다. 지금도 모두들 어디선가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갈현 고개를 넘자 드디어 백골부대의 상징인 허연 백골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군부대를 만났다. 안갯속에 묻힌 부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하루 일정을 준비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요즘은 아마 모두 다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선임하사가 외친다. "전원 핸드폰 위치로, 연병장 집결 5분 전!" 

길은 한참이나 도로(호국로) 갓길을 걸어야 한다.
지경리에 가까워지며 차량과 함께 걷는 도로 갓길을 벗어났다
10300915 지경리

철원 지경리다. 42년 전 청년은 군 입대를 했다. 의정부103보충대로 들어가 사흘 뒤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다른 병력들과 달리 우리는 버스를 탔다. 자대로 걸어서 이동하는 병력들보다 좋은 곳으로 배치되나 하고 기대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몇 시간을 달려 우리가 내린 곳은 정문에 거대한 백골이 떡하니 걸려있는 부대였다. 모두 어리둥절했다. 버스를 타고 멀리 온 것은 천국행이 아니라 지옥행 버스였다. 신병교육대에서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이곳 지경리 부대에 배치되었다. 나의 병과는 104(M60기관총)이다. 얼마 후 부대는 철책으로 이동했다. 철책에서 북한의 오성산을 바라보며 1년 간  초병으로 근무를 하고 대성산을 넘어 후방 와수리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청춘의 군생활은 끝이 났다. 법적 용어로 '병역 의무'를 마친 것이다. 

16-2코스 종점, 남대천교 앞

9시 45분 종점에 도착했다. 

남대천교에서 와수리 세월교까지 이어지는 DMZ 평화의 길 17코스는 길이가 7.9km이며 약 3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쉬움'의 길이다. 평화누리 자전길과 함께 걷는 노선으로 화강 주변의 청정자연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텅 빈 논위를 나는 철새의 모습이 아름답다(지난 겨울 먼저 길을 간 걷기여행자가 찍은 사진)

17코스는 이 길에서부터 시작된다. 철원군 화강 느티나무 삼십리길이다. (안내 입간판: 여기는 평화누리길 3코스 화강길 구간 중 11.2km의 거리로 조성된 화강 느티나무 삼십리길입니다. 제방둑을 따라 이어진 느티나무의 너른 그늘 아래를 거닐어 보세요. 깨끗하고 시원한 숲내음을 마시며 느티나무의 맑은 기운까지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은행나무길, 벗나무길, 메타세쿼이아길 등 여러 길을 걸어왔지만 느티나무 길은 처음이다. 기분이 좋아지는 나무 그늘 아래 길 걷기이다.
 
세상은 시가 있고 그림이 있고 음악이 있어 아름답다. 나무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광채를 입힌다. 그리고 결국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완성시킨다. 

화강

화강 花江은 북한의 김화군 수리봉에서 발원하여 쉬리마을을 지나 한반도 유일의 화산강인 한탄강으로 유입되는 길이 23.5km의 지방 하천이다. 화강은 그간 남대천으로 불려오다 뜻있는 사람들이 자료를 정리하고 각종 문헌을 고증받아 2009년 7월 3일 옛 이름(지명)이었던 지금의 화강을 되찾았다. 고려시대부터 불려왔던 화강은 아마도 그 당시부터 수려한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면서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꽃으로 덮인) 강이란 뜻으로 화강(花江)으로 불리어졌지 않았나 싶다.

화강 쉬리공원을 지나 와수리로
서면생활체육공원의 와수축구장

쉬리공원을 지나 와수리 한 체육공원 옆을 걷는다. 주변엔 치킨과 피자 냄새가 가득하고, 체육복을 입은 군인들이 축구를 하고, 병사들은 이곳 저곳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철망 너머로 한 군인에게 무슨 행사냐고 말을 걸었다. 대대체육대회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어느 부대냐 물으니 22 여단이라 한다. 아! 내가 근무한 22연대 그 부대다. 내가 40년 전 여기서 근무했다고 하자 센스 있는 병사는 놀라는 척을 해준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니 이유 없이 기분이 좋다.

철책 근무 시절 소대 마당에서... 저 수류탄 통은 실전용이다

와수리 근처 길에서 만난 뱀 한마리, 옛날 군 시절엔 저건 간식이었다. 특히 시골 출신인 병사는 무조건 잡아서 부대로 가져와 불을 피우고 껍질을 벗겨 구웠다. 맛있게 먹는다. 먹어보라는 권유에 도시 출신인 나는 미적거리다 겨우 한 점 먹어보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부식 조달을 하러 마사토 산길을 넘어 다닐 때 흔히 잡아오는 게 뱀이었다.
 
나는 예전에 총을 잃어버리는 꿈을 많이 꿨다. 지금은 아니지만 중장년의 시절에도 가장 많이 꾼 꿈이 개인화기인 총을 잃어버리거나 잃을 뻔 한 상황에 대한 것이다. 총 때문에 꿈속에서도 굉장히 당황했다. 왜 다른 소재보다 총분실의 꿈이 많았는지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필요하다. 이젠 의미가 없겠지만...  

와수리 시내에 도착했다. 저 건물 너머 어딘가에 우리 부대가 있었다. 여기 냇가에 빨래를 하러 나온 기억이 난다.  

와수리 버스 터미널
와수리

평화의 길 18코스는 와수리세월교에서 도덕동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14.6km의 난이도 '보통'의 길이다.

오성산과 대성산

여기 철원지역 DMZ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오성산(북)과 대성산(남)이 마주보고 있다. 우리는 대성산 북측 면에서 오성산을 바라보며 철책 근무를 했다. 반대로 북한군은 오성산 남측면에서 대성산을 바라보며 경계 근무한다. 당시 대남, 대북 방송은 하루 종일 계속된 걸로 기억된다. 야간 경계 근무를 땐 수령님 찬양 일색인 북한과 달리 남한은 당시 유행하는 대중가요를 많이 내보냈다. 나는 깜깜한 북녘을 바라보며 들었던 신형원의 '유리벽'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심지어 가끔 흥얼거리기도 한다.

10301333

길은 강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하천변 길 옆에 무엇에 쓰는건지 애매한 구조물이 있다.  굴뚝같기도 한데 살펴봐도 아궁이가 없다. 주변 농민들에게 필요한 건가 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나중에 길을 가며 힌트를 얻었는데 아마 군 화생방 작전과 관련된 구조물인 것 같다. 정확히 어떻게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군사지역인 여기 말고는 일반적인 길에선 보기 어려운 모양새이다.

길은 백골공원을 지나 서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서면엔 3사단 백골부대의 사단본부가 있다. 

서면 근처의 징검다리, 징검다릴 건너긴 처음인가?
10301608 서면 도착

18코스 종점까진 아직 몇 km가 더 남았지만 여기서 중단해야 한다. 종점엔 숙박 시설이 없다. 잠곡3리라는 작은 마을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도 위태로웠다. 지도상에 3개의 숙박업소가 있는데 두 곳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 길가의 가게에 물어보니 길 끝 쪽에 있는 '대원장'이 영업하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얼른 그곳으로 가 방을 얻었다.

 

여관 주인은 한 사람의 트래커가 이미 방에 들었다고 한다. 아마 내가 오늘 아침에 지경리 부근에서 본 사람일 것이다. 그도 평화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길에서 본 나머지 2명(남녀 각 1명)의 걷기 여행자들도 이곳에 나타났다. 그들도 내가 묵는 여관에 방을 잡아 쉴 것이다. 요 며칠 길에서 본 4명이 모두 한 여관에 모인 것이다.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일의 일정이 걱정이다. 어떻게 걸을 지 방향을 결정하기 어렵다. 어제부터 고민하고 있다. 복주산을 어떻게 넘을까? 평화의 길 뿐 아니라 코리아 둘레길을 걸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숙소이다. 식사야 안 해도 그만이다. 배낭에 먹을 것을 넣어 두면 배고플 일은 없다. 오히려 식당에 가지 않는 것이 더 편할 때가 많다. 하지만 잠은 어쩔 수 없다. 혈기 왕성한 젊은 사람이 백팩킹을 하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걸음을 멈추어야 할 때 잠 잘 곳이 있어야 한다. 풍찬노숙할 순 없지 않은가? 대도시 인근과 달리 오지에서는 숙소가 있는 지점을 확보하지 못하면 낭패를 본다.

 

한 여관에서 밤을 보내는 4명의 걷기여행자는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잠들 것 같다. 복주산 어떡하지? 복주산 휴양림 관리소에서 이미 산불 조심 기간이 시작되어 입산할 수 없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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