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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평화의 길

DMZ 평화의 길 22, 23코스(화천읍에서 평화의댐까지)

by 로드워커 2025. 11. 17.

평화의 길 22코스는 화천대교에서 풍산교까지 이어지는 길이 15.3km, 약 5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쉬움'의 길이다. 화천읍 시내 구간을 지나 북한강의 절경을 만끽하며 딴산유원지와 꺼먹다리, 숲으로다리 등을 지나는 길이다.

2025년 11월 1일(토) 6일 차, 6시 전에 숙소를 나왔다. 오늘의 걷기도 문제는 숙소이다. 이리저리 궁리해도 좀처럼 답을 찾기가 어렵다. 숙제는 나중 문제고 아침을 먹고 싶었다. 시장통을 어슬렁거리며 마땅한 식당을 찾았다.

시장통, 불 켜진 한 식당에서 퍼져나오는 황태국 냄새에 구미가 확 당겼다. 식당문을 열었으나 관광객으로 보이는 울긋불긋한 여인네들로 식당이 만석이다. 주인의 손사래에 밖으로 쫓겨났다. 몇 집 건너 황태국 메뉴가 적힌 식당이 또 있다. 들어가니 내가 첫 손님인 듯하다. 끓여 온 황태국은 맛있다 할 순 없지만 하루를 위한 에너지 충전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먹었다.

북한강의 아침 길을 걷다가 그 식당에 여인네들이 꽉 들어찬 이유를 알게되었다. 이른 새벽 시장통 식당의 여자 관광객들의 아침식사는 어딘가 어설프다. 코스를 걷다보니 오늘 열리는 걷기대회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그제야 느낌이 왔다, 울긋불긋 여인네들은 행사진행 요원이거나 자원봉사자들이다.  

빛이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는 잔잔한 북한강가에 섰다. 한강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난 이후의 이름이다. 북한강은 남한강보다 더 고요하고 애틋하고 서정적이란 느낌이 든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인의 詩가, 가수의 노래가 북한강을 감상이 흐르는 강으로 만들어 놓았다. 여명이 밀려드는 고요한 북한강에서 '흡'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아침의 북한강에 어울리는 날씨다. 흐리고 포근하다.

산소길

폰툰(Pontoon)은 물위에 뜨는 구조물을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상류작전 시에, 물 위에 설치한 부교의 이름이 폰툰이다. 화천 '숲으로다리'는 폰툰다리로서 드럼통 위에 나무로 이어 만든 부교이다. '숲으로다리'라는 이름은 소설 '칼의 노래' 김훈 작가가 이 다리가 숲으로 들어가는 다리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화천군은 여름철 자연재해 대비를 위해 6월 4일부터 별도 해제 시까지 부교를 일시 철거한다.)


 '숲으로다리'는 화천 산소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구간으로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물안개가 그득한 날이면 발밑의 길이 보이지 않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부교를 걷는 기분이 그야말로 좋다. 엇그제 철원 한탄강에서 부교를 포함한 트레킹코스 이용 요금이 1만 원이란 안내문을 보았는데 여긴 무료로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북한강과 용화산과 강변 숲이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하는 수상부교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 강 위를 걷는 도보여행자가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구미리와 대이리를 연결하는 인도교인 살랑교는 물 위에 떠있는 숲으로다리와 함께 북한강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걷기 코스를 제공한다

살랑교 앞, 오늘 열리는 '화천산 산소길 걷기' 행사장
구만교

구만교는 일제가 기초공사를 했고 북한이 교각을 세웠으며 남한이 상판을 올려 완공된 특이한 역사를 가진 다리이다.

구만교 입구의 공원이다. 북한강과 평화로 사이에 조성된 길쭉한 생김새를 가진 작은 공원이다. 아침햇살과 맑은 공기, 예쁜 정자와 벤치 그리고 북한강과 나무들은 공원을 지나는 길손을 평화롭게 만든다. 여기야말로 평화의 중심지인 것 같다. 남한의 그 어느 곳보다 평화스러운 곳은 휴전선 접경지라는 아이러니는 나만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 코리아둘레길을 여태 걸어온 나는, 이 길에서 평화를 느끼고 있다.
 
화천읍에서 출발해 북한강을 따라 걷는 평화의 길 22코스는 정말 멋진 길이란 생각이 든다. 22코스는 코리아둘레길 코스 베스트 5에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동해, 남해, 서해, DMZ의 둘레길 걷기가 모두 끝난다. 코리아둘레길 코스 베스트 10을 선정해 볼까 하는 생각에 지나 온 길들을 회상해 본다. 쉽지 않다.

북한강은 양평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난다. 거기서부터 한강이 시작된다. 여기서 양평두물머리까지 113km를 흘러 한강에 합류한다.

화천 꺼먹다리

꺼먹다리는 1940년대 화천댐과 화천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세운 폭 4.5m, 길이 204m의 다리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상판을 나무로 올려 완성하였다. 부식을 막기 위해 나무에 콜타르를 칠하였는데 이로 인해 다리가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띠어 '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폭파되지 않고 남아있다. 

딴산 유원지 앞 버스정류장
처녀고개, 간판석이 조금 어설프다

전설은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 도령과 처녀가 풍산마을에 살았다. 도령은 과거를 보러 갔다. 처녀는 소나무 옆에서 십수년을 기다렸다. 처녀는 어느날 소나무에 천을 매달다 미끄러져 죽었다. 장원급제한 도령이 돌아와 그 소식을 듣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불출 농사만 짓고 살았다. 그해부터 풍년이 들었다. 그래서 풍산리라 이름짓고 처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성황당을 짓고 이 고개를 '처녀고개'라 불렀다.> 뭐... 그런 전설이다. 전설이 있고 마을 비석이 서 있는 고을은 더 있어 보인다.

22코스 풍산리 명승교, 종점이 가까워진다
풍산2리 성동마트 앞

오늘의 중간 목적지에 도착했다. 23코스는 얼마전에야 민통선에서 해제 되었다. 일몰 이후엔 통행이 불가하다는 말도 있다. 정확한 안내도 없고 사전 정보도 없다. 그래서 해산터널을 지나는 460번 도로를 걷기로 했다. 분명 23코스 종점인 평화의 댐은 어두워진 이후에야 도착할 것이다. 숙박도 문제다. 대중교통은 없다. 내심 히치하이킹을 해서라도 양구 어딘가 숙박이 가능한 곳까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가게에 들어가 과자와 캔커피를 사고 사장과 길에 대한 애기를 나눴다. 어떻게 평화의댐까진 가겠는데 그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 예상된다. 나는 '평화의댐은 관광지인데' 어떤 편의나 연결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오지라는 것이다. 실제 그랬다.

평화의 길 23코스는 풍산교에서 시작하여 평화의댐(국제평화아트공원)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길이가 20.6km이며 7시간 30분이 걸리는 난이도 보통의 길이다. 2025년 3월부터 민통선 북상으로 도보로 이용이 가능하다. 단, 야간시간에는 통행이 불가하다.(종점 평화의댐은 대중교통이 없으므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갈림길에서... 왼쪽이 7사단 신병교육대 앞을 지나는 23코스이고 오른쪽은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 도로, 평화로이다. 나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평화로에 들어서자 처음 만난 이정표가 나를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아니 22km라니, 뭐가 이렇게 길어'  시간은 이제 정오인데 남은 거리가 버겁게 느껴졌다. 이젠 우회도 후퇴도 없다 그냥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 깜깜한 밤 평화의 댐에서 미아가 되더라도 그건 나중의 문제다. 일단 가자!

해산터널을 향해 460번 오르막도로를 끙끙거리며...
해산터널(1,986m)

해산령 해산터널에 도착했다. 코리아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긴 터널을 통과하여 걷기는 처음이다. 터널에 도착하기 전까진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막상 터널 걷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지나는 차량이 많지 않고 대형 화물차는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다. 오히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이 지나갔다. 어떤 친구는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터널을 지나면 평화의 댐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성동가게 사장이 터널을 나가면 비빔밥을 파는 휴게소가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쉬어가야겠다.   

해산터널 입구의 해오름휴게소

오후 2시, 해산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비빔밥을 주문하고 휴게소 사장과 얘기를 나눴다. 평화의 댐에 혹 버스가 있는지, 숙박할 곳은 있는지를. 그 사장은 이제 12km 남았는데 그곳엔 교통편이나 숙박할 곳은 없다고 걱정한다. 어떤 손님은 화천으로 가는 중인데 우리 차를 타라고 하고, 댐 근처 누구네가 옛날에 민박을 했다며 혹시 거기서 잘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손님도 있었다. 결국 뾰족한 수는 없다. 밤길을 걷다 지나가는 차가 있다면  얻어 탈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안되면 밤길을 하염없이 걸어야지.

 

내 뒤로 한 부부가 들어왔는데, 아침에 살랑교 부근에서 산책하던 부부였다. 오전에 두 분을 보았다고 아는 체를 하자, 부인이 차를 타고 해산령을 오르다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게 나냐고 묻는다. 하루에 두 번을 보았으니 이것도 인연이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충전하던 핸드폰을 챙겨 다시 휴게소를 나섰다. 서울 아산병원에선 검사 안내 카톡이 계속 날아오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작나무

해산령 넘어 평화의댐으로, 하산 길이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 글을 쓰는 것이... 빨리 끝내자. 

하산길에 전망대 쉼터란 곳에서 약초꾼 베이스 캠프를 만났다. 산에서 따온 버섯을 손질하는 사람에게 슬며시 다가가 얘기를 걸었다. 꾼의 두목이 들어오라 하여 따뜻한 차와 산도라지 청을 한 스푼 건넨다. 이거 먹고 고생하라고, 두목답게 반말쪼다. 누가 형인지 따져볼까 하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 약초꾼들과 작별했다. 난 갈길이 바쁜 사람이야.

점점 어두워지는 평화의댐 가는 길

북한강이 보인다. 평화의 댐 근처에 왔다. 마음은 조급하다.

평화나래교
평화의 댐

드디어 평화의댐 앞에 섰다. 23코스의 끝이다. 과연 여기는 도로에 차량도 사람의 흔적도 없다. 단, 댐 아래가 캠핑장인데 그곳에서 불빛과 사람 소리가 조금씩 들릴 뿐이다. 저렇듯 거대한 댐 바로 밑에서 캠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배낭에서 플래시를 꺼내어 앞을 비추며 길을 걷는다. 이제 아무런 계획 없이 걸을 뿐이다. 지나가는 차도 있을 것 같지 않다. 한마디로 '모르겠다'이다. 

충남 서천 부근에서 보고 인상 깊었던 허총무 리본이 달렸다. 그가 오늘 여기를 지나갔다. 누군지 한번 만나보고픈 마음이 생긴다.

어둠 속에서 양구를 향해 걷는다. 

아! 이런 일이... 평화의 댐에서부터 어둠 속을 2km 남짓 걸었을 때 길 옆에 불 켜진 집을 만났는데, '사계절민박'이란 네온이 켜져있다. 지도 검색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집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이런걸까? 조심스레 대문을 밀고 집으로 다가갔다. 혹 손님을 받지 않으면, 만실이면 낭팬데... 다행히 내가 잘 방은 있었다. 오늘은 될대로 대라 하고 전진했던 것이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아무튼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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