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끝이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길로 이어진다. 철로, 차로 그리고 농로든 오솔길이든, 하물며 험준한 산이나 끝없는 숲과 들판도 길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모든 길에 끝이 있다. 인간이 막아놓은 갈 수 없는 길이다. 나라의 삼면이 바다니 어디로 걷든 우리는 결국 발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반도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를 보고 감탄하지만 또 하나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모든 길은 결국 막혀있어 더 갈 수 없다는 현실이다. 그 한계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해파랑길 종주이다. "그 동안 즐거웠지, 하지만 이건 기억해"라고 해파랑길 걷기가 마지막 날에야 들려주는 소리없는 외침이다.
이번 해파랑길 종주의 마지막 날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길과 산하를 무심히 바라본다. 동해 바다는 여태와 똑같은 모습으로 푸르게 파도치고 있다. 금강산의 여러 봉우리가 웅장한 모습으로 하늘과 닿아 있고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동해에 빠져든 해금강은 자유로운 물고기들과 희롱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저기 북녁의 산하를 마음껏 걸어보길... 내 후손들이라도 꼭.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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