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로, 전체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해파랑길’의 명칭은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습니다. ‘해파랑길’의 의미는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 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이며,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해파랑길’의 조성에는 관련 연구자, 트레킹 전문가, 소설가, 시인, 여행작가, 역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위 글은 "두루누비(KOREA MOBILITY)"에 소개된 '해파랑길' 안내글이다. 나는 이번 해파랑길 종주를 하면서 이러한 취지에 맞는 여러 사람들이 애쓴 활동의 흔적들이 길 위에 펼쳐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나의 느낌을 말하자면 "고맙다! 해파랑길"이다.
걸을 수 없는 곳에 길을 만들고, 있는 길도 걷기에 적당하게 손질하고, 세심한 표식을 부착하여 길손이 헤매지 않게 하고, 지나치지 말고 둘러보아야 할 곳은 그리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그런 애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물론 사람이 어디까지 가겠다고 작정하고 길을 나서면 못 갈 일은 없다. 하지만 초행길에서 아름다운 산하를 두루 보며 '사색'까지 하면서 갈 여유가 생길까? 쉽지 않으리. 해파랑길, 그래서 고맙다.
세상사 모두가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듯이 해파랑길도 음양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해파랑길엔 청명한 하늘과 푸르른 동해, 아름다운 산과 들과 강이 있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때론 암울한 하늘과 세찬 바람, 성난 파도로 일렁이는 동해가 있고, 부서지고 아픈 흔적과 상처가 있다. 그리고 외롭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이번 해파랑길을 걸으며 안타까웠던 점이 몇 가지 있다.
무엇보다 울진, 삼척, 동해 구간에서 산불이 남긴 아픈 상처를 온전히 밟고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대충 눈으로 보기에도 그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 그 곳이 삶의 터전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둘째는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로 아름다운 동해안을 마구 파헤쳐 놓는 개발 현장들을 보는 것이다. 지자체는 앞장 서고 일부 지역민은 부하 뇌동한다. 자본은 삽 들고 춤만 추면 된다. 과연 '닥치고 발전'만이 좋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팽개쳐진 개발의 잔해, 텅 빈 상가와 황폐한 건물들을 보는 것은 산불 현장보다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한다.
셋째는 누구나 느끼는 분단의 현실이다. 걷다가 이제 더는 갈 수 없어 멈춰야만하는 현실을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낀다. 나는 20대 군생활을 휴전선에서 철책 근무를 하며 보냈다. 그때는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북녘을 쳐다보며 경계 근무를 했지만 지금 같은 느낌을 갖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민족의 땅 한반도가 이렇게 잘려있구나 하는 쓰린 마음을 이번 종주를 통해 실감한다. 나이가 든 탓인가?
마지막으론 개인적 자질의 부족일터지만 걷다가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 아쉬움이다. 같은 길을 걷는 길손과의 소통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곳이 터전인 지역 사람들과 눈인사도 하고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적었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목적지를 향해 그냥 묵묵히 걷는 것에 열중할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 나누는 몇 마디 대화야말로 걷기의 진수요 소중한 열매다. 다음부터는 시간이 곱절 더 걸리더라도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다.
해파랑길 안내 책자 한 귀퉁이에 '걸어야만 볼 수 있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이란 문구가 있다. 이 말에 100% 공감한다.
'걷기'는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자연스럽고도 중요한 신체 활동이다. 걷기는 생각하기, 호흡하기, 보기, 듣기, 냄새 맡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걸어야만 보이는 것도 있다. 걷는 것 만큼 신선하고 풍성한 생각의 장을 열어주는 활동은 없다.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지나면서는 절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길손에게 온전히 전해주는 것이 '걷기'이다.
찬란한 태양빛은 너른 산하에 쏟아지고, 해안에 도착한 파도는 안도의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이 흘리는 땀방울에선 희망의 소리가 난다. 솔 숲을 지나는 바람에 풀들은 몸을 누이고, 새들의 합주는 창공으로 요동친다. 나그네가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는가?
길 위에서
함허
산 아래 한 줄기 길이 있어라
끝없는 봄 빛 눈 앞에 환한데
산 그림자 속 흰 꽃 붉은 꽃 피어있네
걷고 또 걸으면서 하늘도 보고 땅도 보네
함허(1376-1433) 조선 초기의 승려. 무학대사의 수제자로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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